감정의 형이상학

by 박종민

나는 오래도록 이성의 힘을 신뢰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분석하고 구조화하고 논리로 감정을 지배하는 자아를 구축하며, 나는 세계를 해석하고 나 자신을 조율하려 애썼고, 감정은 언제나 통제의 대상이었고 해석의 대상이었으며, 일종의 실패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너무나 정교하게 구축해 놓은 이성의 언어들 사이로 자꾸만 미세한 틈이 생겨났고, 그 틈 사이로 스며든 것은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우울과 분노의 잔향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잃었을 때 밤늦게 골목길에 혼자 남겨진 감각이었다. 나는 그것을 외면하려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야말로 진실이라는 감각이 나를 집어삼켰다. 이성이란 결국 감정을 나열하고 명명하고 분석한 뒤의 사후적 구조에 불과했다. 존재의 근원. 감정이 근원이었다, 내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구분하는 모든 일련의 작업은 사실 감정에서 비롯된 파편들에 불과했다. 나는 이성을 통해 세상을 정리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감정을 통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며, 감정은 설명되지 않는 어떤 실체로서 언제나 내 안에 머물렀고, 그것은 기쁨이기도 했고 슬픔이기도 했으며, 종종 사랑의 형태로 나타났고, 때로는 무력감이나 공허함이라는 형태로 침잠했고, 나는 그것들을 이름 붙일 수 없었고, 이름 붙이려는 순간 사라지는 속성들에 지쳐 갔으며, 그래서 나는 감정을 언어화하려는 시도를 멈추었고, 대신 감정이 나를 통과하게 두었고, 그 감정 속에서 나는 점점 나라는 존재의 형태를 잃어갔고, 형태를 잃는 순간에야 비로소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은 고정되지 않았고, 감정은 지나갔고, 그러나 지나간 자리에 무언가 남았고,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감정이 지나간 흔적, 마치 벽에 묻은 손자국처럼 미세하게 남아 있는 존재의 얼룩이었고, 나는 그 얼룩을 지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기서 나를 발견했다, 나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감정이 스쳐 지나간 흔적들이었고, 그 흔적들이 나를 ""이게 했으며, 어떤 감정은 나를 비추었고, 어떤 감정은 나를 무너뜨렸고, 어떤 감정은 나를 조용히 통과하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고,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감정하는 존재였고, 감정은 나의 언어 이전의 진실이었으며, 그 감정들의 형이상학 위에 나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흔적에 불과했다.


감정이 사라진 자리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것은 공백이 아니라 그저 정적이었고, 어쩌면 감정의 잔향이 증발된 자리에 남는 미세한 공기 입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응시하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이 나를 통과한 후 나는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졌고, 그 방에는 가구도 창문도 없었으며 빛도 없었고 다만 내 숨소리와 벽에 부딪히는 고요만이 반복되었고, 그 고요는 나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체를 지워나갔고, 나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고, 단어들은 모두 무의미해졌고, 나는 "나는 있다"고 말했지만 그 문장조차 허공을 때리는 공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알베르 카뮈의 말이 떠올랐다,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총을 쐈다",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그 무감의 바닥에서 삶은 부서졌으며, 나는 한때 뫼르소가 비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안다. 그는 정직했다. 그는 감정이 사라진 세계의 온도를 견디며 거기서 살아 있었고, 무의미의 풍경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감정이 꺼진 자리에 남겨진 인간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를 말 없이 보여주었고,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말했다. 부조리를 견디는 자는 반항하는 인간이며, 삶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안 채 살아가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존재라고, 나는 감정이 나를 떠나고 난 뒤 그 무의미의 구조를 온몸으로 견뎠고, 어떤 날은 침묵 속에서 울었고, 어떤 날은 무표정으로 웃었으며, 어떤 날은 책상 위에 손을 얹은 채 한 시간 넘도록 그대로 멈춰 있었고, 그것은 절망도 희망도 아니었고 다만 생존이었고, 나는 살아있었지만 살고 있지는 않았으며, 내가 내 몸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나를 무너뜨렸고, 감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며, 나는 감정 없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고, 동시에 감정 없는 나를 부정할 수도 없었으며,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낡은 담요처럼 구겨졌고, 그것이 내 존재의 실제 크기처럼 느껴졌고, 카뮈가 말한 것처럼 나는 나의 돌덩이를 밀고 있었고, 그것은 산이 아니었고 내 자신이었으며, 나는 매일 나를 끌고 또 끌며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고,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빈 자리가 있었고, 그 빈 자리는 내 것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나라는 허상을 바라보았고, 그 허상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그것은 내가 되지 못한 나였고, 언젠가 감정이 돌아온다면 나는 다시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신, 나는 다시 느낄 수 있을까를 묻고 있었고, 느낌이 없다면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다면 세계도 없으며, 결국 감정은 존재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나는 그것을 한 줄로 말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끝없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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