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내가 매일 술 마시는 줄 안다.
며칠, 일주일, 어떤 때는 단 하루도 글을 못 써
몇 주간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을 때도 있다.
진정 글을 못써 그런 것일까. 그건 핑계다.
몸이 슬쩍 나를 비웃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어제 글 한편을 마치고 나니 비가 내렸다.
글이 끝난 뒤에 소주가 갈급했다.
단골 술집에 가니 여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알고 보니 초등학교 후배란다.
그 한 마디가 후배의 닭발 안주와 김치어묵우동처럼
소주를 다디달게 만든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단 것이 아니다.
쓸 것을 비워냈으니 단 것이다.
첫째 딸이 메시지 보냈다.
"술 조금만 드시고 밥도 꼭 챙겨 드세요."
제자 민철이가 찾아왔다. 다시 술이 다디달다.
밤샘의 등불을 켜고 고독의 세월을 긁어내었기에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달다.
오늘 오후 두 시경 지인이 전화했다.
"여보세요."
"안 죽고 살아있네?"
난 이제 막 아침을 먹었고,
죽음에게조차 내어줄 시간이 없다.
아니, 오직 글 쓰고 죽을 것이다.
술핑계와 글 핑계를 늘어놓는 나란 사람.
참 부조리한 인간이다.
헛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