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試界』 창간 60주년 기념 축사 -지령 712호-
나이 지긋한 법대 출신들에게 『考試界』는 가슴 떨리는 단어일지 모른다. 도서관에 빼곡히
쌓인 그 잡지들이 풍기던 냄새가 지금도 아련하다. 그런데 『考試界』가 벌써 창간 60년을 맞
는다. 인간의 나이로 환갑을 맞은 셈인데 예기(禮記), 곡례(曲禮)를 보면 나이 60이 된 사람
을 기(耆), 70이 된 사람을 노(老)라고 하여 이들 기로(耆老)에 대해서는 국가에서도 특별히
대우하였고, 공손한 뜻을 표했으며, 그중에서도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조정 정사에 대해서
도 자문을 구했다. 그렇다면 이제 환갑을 맞은 『考試界』에 대하여 한국 법학의 길을 물어야
한다. 사법시험 존치 문제와 로스쿨의 불공정 입시가 국민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 지금이 특
히 그렇다.
우선 나는 현재 로스쿨 제도와 함께 사법시험 제도를 병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
서있지만 로스쿨 제도 도입 당시 찬성론의 입장에 서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미국 로스쿨에
서 공부해 본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변호
사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점과 수험법학화, 고시낭인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세계화와 글로벌화 시대에 맞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법학 이론을 습득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법률서비스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친한 후배였던 동
국대학교 최창렬 교수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대두될 문제점들을 열거하며 로스쿨
제도 도입을 반대할 때 로스쿨 제도 도입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한국 법학교육의 정상화 문제
가 변호사들의 밥그릇 문제로 변질되고, 인가 고려 요인에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고려한다는
규정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내가 원하던 로스쿨이 아닐 수 있다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전혀 통과될 것 같지 않던 로스쿨법은 사학법 개정과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단 몇 분 만에 국
회의 문턱을 넘어섰으며, 지금 최창렬 교수의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얼마 전 교육부는 로스쿨입시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발표라는 이름으로 로스쿨 입시에 불
공정 사례가 있었음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우리 전국법과대학교수회 등이 줄기차게 주
장해 온 전수조사 결과 발표가 아니었다. 지난 8년간의 조사가 아닌 최근 3년간만의 자기소
개서에 대한 조사결과였을 뿐이고, 여러 언론에서 그 사례가 보도되었음에도 실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제2차 면접과정에서의 입시청탁은 정작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쪽 조사, 반쪽결과도 아닌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비겁하게 이해관계자인 로펌의 입을 빌려 정성평가의 특성상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점을 악용하여 관련자를 처벌할 명분이 없는 양 발표하고, 신뢰 보호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상 관련 학생들을 처벌할 수 없다면서 관련 로스쿨에 대해서도 아주 가벼운 징계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분명히 신뢰 보호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그 개인에게 귀책 사유가 없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부정 입학을 한 학생 때문에 진정으로 합격해야 할 학생이 불합격한 사건에도 비례의 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스쿨 측은 계속해서 블라인드 면접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왔고, 로스쿨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데도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비로스쿨 교수들이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며 로스쿨의 안착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으며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서 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러한 로스쿨 측만을 비호하며 로스쿨에 대해 단 한 번의 감사조차 실시하지 않으면서 로스쿨편만 들어왔고 이번 조사 결과 발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교육부와 로스쿨 측에 자정 노력이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로스쿨 측이 내놓은 블라인드 면접을 하겠다는 등의 개선 방안 역시 문제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고 있지 못하며, 연고주의 문화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로스쿨 제도가 맞는 제도인지에 대해 강한 회의감까지 든다.
독일은 1971년도부터 독일 전역의 총 31개 법과대학 중 7개 주의 8개 대학에서 최초로 이론 교육과 실무교육을 병행시키며 로스쿨에서 총 5년 6개월간의 교육을 하다가 이러한 교육과정마저 부실하다고 생각하여 1년의 교육과정을 추가하여 총 6년 6개월의 로스쿨 교육과정을 유지하며 3년을 버텼다. 그러나 결국 실패를 자인하고 13년 만에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주요 실패 원인은 크게 고비용·저효율 효과와 법조 인력의 실력하락으로 인한 법률서비스의 질적 하락이었다. 독일의 대륙법계는 영미법계와 사건 접근방법부터 다르다. 영미법계는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과거 법원이 그러한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를 찾아내는 테크닉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륙법계의 법조인들은 먼저 법전에서도 관련 조문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법해석학적 기초가 필요하고, 실체법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며, 영미법계와 달리 대륙법의 특성상 상하위법의 서열 관계나 특별법의 위치 관계까지 파악하여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우리처럼 단 3년간의 과정으로 이론과 실무를 익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케이스 탐색론만을 익힌 변호사들을 일정 기간 로펌에서 교육시킨 후 현장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영미법계와 달리 대륙법계의 경우에는 그 법학체계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공부의 양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로스쿨제도도 실패로 귀결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우리의 현행로스쿨 제도 하에서는 법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세 이래 법학은 철학, 신학, 의학과 함께 학문의 대종을 이루어 왔는데, 로스쿨제도가 도입된 후 3년 동안 판례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법학인 양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학이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재판 결과가 나오는 식의 교육이라는 조롱거리가 되고, 앰뷸런스를 쫓고 항공사고 현장에서 전단지를 돌리는 미국 변호사들의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 선진법학을 배우러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없고, 법학이라는 학문을 업으로 삼으려는 풀타임 대학원생은 씨가 말라버렸다. 일본은 이러한 점을 우려하여 학부를 그대로 존치했고 학부에서 로스쿨로 교수를 파견하는 형식을 취해 학부가 주(主)고 로스쿨이 종(從)인 관계를 이루게 설계함으로써 이론법학의 붕괴를 막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겨우 일본법학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후진국에 우리 법을 수출까지 했던 나라가 학문 후속세대의 단절로 법률 후진국가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엊그제까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법개혁을
부르짖던 법학 교수들은 이제 로스쿨교수와 비로스쿨교수로 나뉘어 진영논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로스쿨은 오히려 사법개혁을 가로막는 강고한 기득권세력이 되어 버렸다. 이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편 로스쿨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 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교육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 시험 합격이 주된 목표인 로스쿨생들이 굳이 특성화 교과목을 수강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다양한 전문 변호사 양성」이라는 특성화 교육제도의 취지는 완전히 퇴색하여 유명무실해졌다. 대규모 로스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로스쿨에서 특성화과목은 거의 폐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로스쿨의 설립 취지와 달리 지역 균형을 고려한다면서 나눠주기식으로 소규모 로스쿨을 인가하고 인가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된 로스쿨은 재정형편은 고려하지 않은 채 교수 숫자 확보에만 주력할 때 이미 예견된 것이다. 로스쿨 제도와 사법시험제도의 병존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로스쿨에 출구전략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로스쿨은 비법학사들만을 교육하도록 하고 대학원과정은 비로스쿨에만 두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다.
로스쿨제도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거 사법시험 제도 하에서의 문제점들이 로스쿨제도 하에서는 치유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모 신문에는 많은 돈을 들여 신림동의 한 학원에서 출제한 문제지로 모의고사를 치르고 그것을 장학금 지급과 연관시키고 있어 당연히 규정에 의해 장학금을 받아야 할 학생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있다. 로스쿨 입학을 위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해 로스쿨생들은 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올해 최초로 변시 낭인이 등장하였다. 사법시험 하에서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변호사 시험을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소득순위가 매우 높은 측과 취약계층은 상대적으로 쉽게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는 구조로 나머지 50%는 돈이 없으면 절대 변호사가 될 수 없다. 결국 최고의 헌법적 가치인 기회 균등과 평등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인 것이다. 로스쿨 측에서는 취약계층을 예로 들어 사법시험 제도보다 로스쿨 제도가 더 낫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사법시험 제도 하에서도 응시 횟수를 제한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할당제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진짜 두려운 것
은 사법시험 제도 하에서는 절대 법조인이 될 수 없었던 실력 없는 특권층들이 이제 입학만 하면 4명 중 3명이 변호사 될 수 있는 현행 제도를 이용하여 이 사회의 중추를 장악하는 일이다.
혹자는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의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절대적 가치가 아니며 진정한 잠재력과 다양성을 평가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좋은 인재를 발굴해야 하기 위해서는 가정환경을 알아야 한다며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직업을 쓰게 한 것을 옹호한다. 그런데 과연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공정성이라는 가치와 동렬에 놓일 수 있는 것일까? 다양성의 문제는 1996년에 미국 텍사스 로스쿨의 입학허가 정책에 관하여 인종을 고려하는 정책은 무효라고 판단한 제5항소법원의 Hopwood v. Texas판결에서 기원한다. 오랜 논쟁 끝에 미연방대법원은 Grutter판결에서 고등교육 분야에 있어서 인종에 근거한 적극적 평등화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인정하였지만, 텍사스 로스쿨이 주(州)전역의 고등학교에서 상위 10% 이내의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은 자동으로 합격시키고 나머지는 학교 성적, 수학 능력 시험 성적, 과외활동, 에세이, 수상실적, 봉사실적, 실습경력, 가정환경,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인종 등을 고려한 이른 바 ‘전체적 심사 절차’를 진행하며 문제가 되었다. 제5항소법원은 텍사스 로스쿨의 입학허가 절차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2013년에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하고 엄격심사(strict scrutiny)를 충분하게 할 것을 요구하며 사건을 제5항소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제5항소법원은 텍사스대학의 인종을 고려한 입학허가 프로그램에 대하여 다시 엄격 심사를 한 결과 대학의 입학허가 결정은 학생군의 다양성이라는 「설득력 있는 국가목적(compelling state interests)」을 달성하기 위해 「엄밀하게 재단된(narrowly tailored)」 수단이고, 따라서 연방헌법 수정 제14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문제는 언제든 다시 연방대법원이 엄격심사를 이유로 적극적 평등화 조치가 위헌이 라는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극적 평등화조치는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평등을 위한 차별」을 허용함으로써 평등권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조치이다. 그러나 현재의 연방대법관의 다수는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대학의 결정에 대하여 대학 측의 판단을 존중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고, 대학이 어떤 학생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어야 하지만 개인의 권리보호라는 헌법적 한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평등을 위한 차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위 두 가지 엄격 심사를 통해 평등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공정성은 절대 다양성과 동렬에 놓일 수 있는 가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평등권의 침해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원칙적으로 완화된 심사 기준인 자의금지 원칙을 적용하고,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거나 관련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게 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엄격한 심사 기준인 비례의 원칙을 적용한다. 문제는 이미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 평등화조치를 취해놓고서도 다시 자기소개서를 통해 다양성을 고려하겠다는 발상으로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는 영미법이 옳다거나 대륙법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두 제도는 수렴해야 할 제도이지 서로 배척해야 할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스쿨 제도의 발전과 안착을 위해서도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나 더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독점은 반드시 퇴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에는 법학사들이 일정기간 실무를 익힌 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과 비법학사들이 일정기간 동안 로스쿨에 다닌 후 다시 실무를 익혀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이원화된 구조를 택하고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더 다원화된 방법으로 변호사를 양성하고 있다. 로스쿨이 기를 쓰고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국법학교수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로스쿨 도입에 앞장섰던 한 교수가 사시존치론자들을 논의의 장에 참여시키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또 다시 절망한 바 있다. 우리는 아직 로스쿨 폐지를 주장한 적이 없다. 정말 이 나라 법학 발전과 바람직한 법조인 양성을 원한다면 이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볼 것을 호소한다. 로스쿨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 전에 말이다.
(고시계 201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