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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샘 Jun 29. 2022

흔적

관계 1 말하지 않아도 너를 느끼고 있어!

오늘도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게 갔다. 분주한 아침부터 무언가 마무리하고 출발했던 자리도 돌아오는 저녁까지, 늘 무언가를 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듯하지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나의 일상~

정말 매일 같은 시작을 알리고 그 시작 속엔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 그 누군가가 있어 나는 일상을 다르게 느끼고 있다. 참 다행이다. 매일 같은 일상이라면 어쩌면 그건 너무 큰 슬픔일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두 녀석과 남편, 반려견 딸기, 양가 가족들, 직장 동료들, 내가 만나는 아동들과 학부모들, 내담자들. 내가 만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무언가를 같은 듯 다른 일들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다른 감정을 경험하고, 다른 사고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하루를 다른 하루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 하루들이 모여서 내 평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내 평생의 한 조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삶의 한 조각에 흔적을 남긴다. 오늘은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고 있는 내담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감정적 안정을 경험하고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내담자가 너무 우울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우울함의 정도가 극심했는지 내담자의 위생상태가 다른 날과 너무 달랐다. 금방 울듯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있었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잠시 마주 앉아있었다. 내담자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선생님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담은 1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상담을 마무리할 때쯤 내담자의 얼굴은 처음과 달리 환해졌고, 웃음도 되찾았다. 이렇게 내담자는 내게 찾아와 자신의 흔적 보여주었고, 우린 그 흔적을 다시 새로운 흔적으로 만들었다. 그 새로운 흔적이 내담자를 세웠다. 내게도 내담자가 남긴 흔적이 생겼다. 이런 흔적들이 쌓여 나는 상담자가 되어가고 있다.



퇴근을 하면서도 내담자 생각을 했다. 늘 그렇듯 집 앞에서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더니 반려견 딸기가 너무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정말 온몸으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에 모든 것을 잊는다. 나도 덩달아 반갑게 인사를 하고 딸기를 안아주고 비비고 ㅋㅋ 나도 딸기의 인사법을 습득해 가고 있다. 딸기의 배변 훈련을 위해 여러 모로 가족들 모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오늘은 딸기가 배변 패드 위에 응가와 쉬를 모두 해둬서 온 가족인 기뻐하고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너무 신기방기 ㅋㅋ 딸기는 오늘 이렇게 내 삶에 한 흔적을 남겼다.

딸기와의 인사를 아쉬워하는 한 사람!! 우리 재원이 ㅋㅋ 재원이 와도 딸기의 인사법으로 인사를 나눴다. 다 큰 재원이가 딸기처럼 안긴다. ㅋㅋ 식탁 위에 에코백이 하나 놓여있다. 아프리카 지도와 위, 아래 패턴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가방.


재원이에게 물었더니 미술학원에서 만든 작품이란다. 패턴이 너무 이쁘다고 칭찬하자, 선생님께서 패턴 만드는 걸 조금 도와주셨고 아프리카 지도는 혼자 모두 작업했다며 자랑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어 두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단다. 엄마 줄 거니까. 그래서 우린 에코백을 함께 쓰기로 했다. 학교 준비물 가져갈 때도 쓰고 엄마도 가끔 필요할 때 쓰기로 했다. 가방이 너무 예뻤다. 재원이의 마음이 담긴 작은 가방 선물~~ 우리 아들 재원이도 오늘 새 삶의 한 조각에 한 흔적을 남겼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잠깐 쉬었다. 딸 서연이가 수학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 남편은 늘 마중을 나간다. 알람을 맞춰두고 늦지 않게 나가서 서연일 기다린다. 남편에게 30분 먼저 나가서 딸기 바람 쐐주고 우린 좀 걷자고 했다. 딸기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한다. 아직 접종이 끝나지 않아 목줄을 하고 땅을 밟을 수는 없지만 안고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트렉을 따라 걸으며 딸기와 대화도 했다. 딸기는 바깥 냄새를 맡고 바람을 느끼며 좋아했다. 그리고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 친구들을 보고 너무 신이 났다. 남편과 함께 걷고 이야기도 나누는 이 시간이 좋고, 바람이 너무 좋았다. 남편도 오늘 내 삶의 한 조각에 한 흔적을 남겼다.

드디어 딸내미가 가 도착!! 학원 차량이 서는 곳에서 기다렸더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아빠한테는 관심도 없고 딸기, 딸기를 부르며 비비고 뽀뽀하고 안고 난리다. “딸기가 있어서 힘이 나네.”라고 말하는 서연이를 보니 내 마음의 작은 걱정도 바람에 날아가는 듯했다.

서연이의 그 말이 지금 힘들지만 견디고 있다는 말로 다가왔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주고 엄마, 아빠에게 표현해주니 고마웠다. 우리 딸내미가 도 오늘 내 삶의 한 조각에 흔적을 남겼다. 이 흔적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반복되는 일상을 다르게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우린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기며 사유하며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고, 누군가가 나에게 남긴 흔적으로 사유하며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조각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길 바란다. 내 삶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갈 삶의 작은 힘과 위로일지도 모른다. 내 삶이, 우리 가족의 삶이 그런 삶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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