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시작 — 말보다 큰 침묵
저는 한때, 스스로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듣기’ 속에는 종종 판단, 분석, 혹은 교정의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저 말은 틀린 것 같아’
‘그럴 땐 이렇게 해야 할 텐데’
‘또 그 얘긴가?’
이렇게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을 굴리다 보면,
그 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내 옳음을 증명하거나 상대를 설득하려는 의식이 작동했습니다.
그 순간, 경청이 멎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는 ‘이해의 장’이 아닌 ‘설득의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설득당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설득하려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경청하려면 판단, 분석, 교정의 의도가 없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상대의 말이 들어올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청은 내면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가능하니까요.
‘내면의 생각을 비운다’는 건
‘당신의 존재는 나의 판단보다 더 중요합니다.’라는
겸손의 표현이며,
이것이 바로 경청의 기본자세인 존중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판단을 멈추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때,
‘이 사람은 지금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정보의 수신이 아닌 존재를 수용하는 자세로 다가가면
상대의 진심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경청은
상대의 말을 듣는 동시에,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그 말을 꺼냈는지,
어떤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는지,
그 속에 어떤 두려움이나 바람이 숨어 있는지를 함께 느끼는 일입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한 인사들을 만나보면,
그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청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할 때
그분들은 집중하는 눈빛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살짝 제 쪽으로 기울인 자세로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분들은 말을 들으면서도
중간중간에 궁금한 걸 질문했는데
그 질문들이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대화는 자연스레 깊어졌습니다.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메시지의 50%에서 93%는
표정, 자세, 톤 같은
비언어적 요소(Non-Verbal Cues)를 통해 전달된다고 합니다.
온몸으로 듣는 태도는
"당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내 안의 소음까지 잠재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경청을 영어로 ‘hearing with respect’라고 합니다.
저는 그 표현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중(respect)하며 듣는다(hearing)’
존중이 빠지면 경청은 사라집니다.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
경청이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지?’ 대신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로
생각을 전환하면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경청의 힘은
타인을 변화시키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킴으로써
타인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