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법

비존중의 아픔 8편

by 학연서

관계의 무게에 따라 달라지는 ‘비존중의 유통기한’


비존중의 아픔 1단계부터 7단계까지를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모든 관계가 똑같은 속도로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에 따라, 특정 단계에 머무는 시간도,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속도도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관계는 2단계에서 헤어지고, 또 어떤 관계는 3단계 혹은 4단계에서 헤어지기도 합니다. 5단계나 6단계에서 상대와 헤어진다고 해도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다음 인연을 만났을 때에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김없이 같은 아픔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가까운 관계에서 또다시 갈등이 터지면 습관적으로 범인을 찾습니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네가 변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관계는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어느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관계가 붕괴에 이르는 원인은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을 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있었다면 관계는 애초에 이토록 악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쪽이 불안함에 젖어 감정을 쏟아낼 때, 다른 한쪽이 존중의 태도로 그것을 받아주면 갈등의 불씨는 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 저 사람도 나처럼 아파서 저러는구나.”


상대를 내 기대를 채워줄 ‘역할’이 아닌, 나와 똑같이 연약한 ‘존재’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그 이해와 존중의 태도가 개입되는 찰나, 가속도가 붙던 관계의 추락은 거짓말처럼 멈춥니다.


존중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파도를 묵묵히 받아내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결이 너무 다름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떠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한 사람이 중심을 잡고 존중을 유지하면, 서로를 파괴하는 진흙탕 싸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존중하면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


내가 먼저 존중한다고 해서 꼭 관계를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존중을 선택할 때, 우리 앞에는 비로소 건강한 길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첫째, 관계가 회복될 기회가 생깁니다.

나의 부드러워진 눈빛과 말투는 상대의 긴장을 무장 해제시킵니다. “어? 나를 공격하지 않네?”라고 느끼는 순간, 상대도 방패를 내리고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치유의 선순환입니다.


둘째, 갈등이 평화롭게 정리됩니다.

설령 상대가 끝내 나를 존중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존중을 회복한 나는 더 이상 억울함이나 분노에 휩쓸려 도망치듯 이별하지 않습니다. 대신 차분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위한 안녕을 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절이 아니라 성숙한 ‘선택’입니다.


셋째, 나는 상처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존중으로 매듭을 지은 사람은 관계가 끝나더라도 인연의 유령을 남기지 않습니다. 혐오도, 원망도 남지 않기에 내 다음 삶과 새로운 인연은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존중은 어렵지만 관계의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복잡해 보이는 인간관계를 풀어갈 원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흐르는 물을 막으면 썩듯이, 관계의 흐름을 막는 것은 서로를 향한 비존중입니다. 하지만 그 막힌 둑을 터뜨리는 데는 두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물꼬를 트면 흐름은 다시 이어집니다.


관계가 망가지는 데에는 둘이 필요하지만, 그 관계를 멈추고 나를 치유하는 데에는 나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현재 어느 단계에 있든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쪽에서 먼저 존중을 시작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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