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의 외로움을 소화하며 성장한다는 것.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아시나요. 초등학교에 그런 게 있냐고요? 네,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답니다. 유치원 종일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방과 후, 집에 가도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이 다시 모여 한 반을 이루고 오후 일과를 시작합니다. 강사님이 오셔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자유놀이시간을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좀이 쑤실지, 상상만 해도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무작정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어린아이가 집에 홀로 있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돌봄 교실에 있다가, 학원에 갔다가, 부모님들이 퇴근하고 집에 올 시간에 맞춰 '완전히' 하교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 편이 훨씬 안전하거든요.
우리 교실의 옆 반은 2학년 아이들이 수업 종료 후 모이는 돌봄 교실입니다. 덕분에 제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우리 교실 근처는 꽤 북적북적하고, 여러 소리도 들립니다.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돌봄 교실에 있는 우리 반 학생들이 한 번씩 찾아와 선생님 뭐해요?라고 안부를 물어오기도 합니다. 그도 아니면, 뒷 문에 달린 작은 창에 얼굴을 쑥 비치고 손을 신나게 흔들어 아는 척을 하기도 합니다. 오전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렸으니 오후 시간은 혼자서 밀린 일 좀 하고 싶은데 아주 산통 깨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 아이가 참 자주 옵니다.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급식도 제일 늦게 먹고, 선생님과 단 둘이 남아 있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이 얘기, 저 얘기 다 하고 가면서도, 또 매 시간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뒷문에 얼굴을 불쑥불쑥 비치는 아이입니다. 그중 제일인 것은, 스르륵- 앞문을 자동문처럼 열고는 몰래 숨어 있다가 "까꿍!" 하며 "선생님 안녕~"하고 사라지는 것이랍니다.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에는 가끔 소름도 돋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어두운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약간 무섭거든요.
근데, 이 아이. 어제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이랑 얘기하면 좋아요. 집에서는 외롭거든요." 내 몸이 하나라 슬픈 순간입니다. 비단 이 아이뿐만 일까요. 교실 안에서는 마음 안의 어떤 갈증을 선생님을 통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반응해주고 싶지만, 나는 혼자라 가끔은 그 순간들이 아주 버겁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교실 안의 외딴섬이 되고는 합니다.
절대 돌봄 교실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님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도 일하는 엄마이고, 제 아이가 크면 학원이든 돌봄이든 아이를 맡겨야 하는 처지니까요. 다만, 내 아이가 가지게 될 외로움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어찌 됐던 내 아이는 성장하면서 제 몫의 외로움을 소화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겠지요.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쁨과 행복이, 그리고 그만큼의 슬픔과 외로움이 아이들을 키울 것입니다.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디 이 외로움을 건강하게 견뎌내어서 큰 구김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핍이 아이들에게 너무 큰 생채기를 만들지 않기를. 그리하여 아이들의 딱지 위로 든든한 새 살이 얹어지기를.
언제 적인가 선배 선생님께서 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셨습니다. 교사가 해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싼 것이 뭔 줄 아느냐고. 웃어주고 들어주는 것. 그건 다 필요 없고, 오직 내 몸만 있으면 된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이 웃어주고 들어줘야지요. 접촉이 되지 않아 손 한 번 잡아주고 품에 한 번 안아주는 것은 힘들지만 대신에 너는 내 아이란다-하고 말로 쓰다듬어줘야겠습니다.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 하면 할수록 참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