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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May 18. 2021

무쓸모와 무실속

그것은 도토리 키재기

아이를 낳고 1년간 모유수유를 했다. 우리나라 모유수유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모유수유에 도전하지만, 대부분은 100일을 기준으로 관둬버린다는 것. 젖 먹이는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그, 어떠한, 자애로운 표정과 온화한 분위기. 엄마 젖을 다 먹고 만족스럽게 꺄륵꺄륵 웃는 아기. 캬, 어지간히 아름답다. 하지만 젖 먹여본 엄마는 안다. 사출 때문에 컥컥거리기 일수인 우리 아기, 안 먹는다며 울고 고개를 내 빼는 내 아이, 퉁퉁 불어있는 내 가슴, 늘어진 수유복, 아이 얼굴에 닿을까 대충 묶어 놓은 머리까지. 어느 순간부터 젖소가 된 기분이 드는 치욕스러움, 그리고 모유수유하는 엄마들에게 자유란 없다고 외치는 두세 시간의 수유텀. 결국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애로운' 모유수유를 관두게 된다.




최고봉은 새벽수유. 그나마 아기가 통잠을 자는 시기가 되면 새벽에 길게 잘 수 있지만 거의 100일까지는 새벽에도 두세 번은 일어나서 젖을 먹여야 한다. 물론 이건 분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아기가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돌덩이가 되는 가슴을 매만지며 새벽에 일어나 찡찡거리는 아이를 품에 안는다. 젖을 먹이다 보면 옆에 누워있거나, 저기 옆방에 누워 자고 있는 남편이 생각난다. 이 사람아, 돈 벌어오느라 고생 많았다. 하고 측은한 것도 잠시, 저 남자의 젖은 왜 있는가? 하는 의문에 분노가 시작된다. 저런 무쓸모한 젖꼭지 같으니. 차라리 인터넷에서 2000원 주고 사는 공갈젖꼭지가 더 쓸모 있겠다.




물론, 내 남편은 굉장히 가정적이고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내가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빨래 같은 집안일은 모두 본인이 한다. 몹시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열 달간 내 뱃속에서 자랐으며, 1년간 모유를 먹고, 육아휴직으로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내 아이는 밤잠은 꼭 엄마가 재워줘야 한단다. 함께 놀 때도 아빠는 블록도 쌓지 말고 책도 읽어주지 마란다. 엄마가 하란 얘기다. 밥을 먹을 때도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먹여주란다. 하하, 아빠란 가끔 무쓸모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블록으로 집을 만들고 '누구 집이야?' 물으면 꼭 '아빠'란다. '너 누구 딸이니' 물으면 '아빠'란다. 자석칠판에 그림을 그려서 '누구 그렸어?' 물어보면 '아빠'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무쓸모의 대반전이다. 무쓸모의 대역전이다. 어딘지 속이 상하는 엄마와 약간 우쭐해지는 아빠. 함께 보낸 시간이 훨씬 많고,  궂은일을 도맡아서 한 엄마는 그깟 블록 부동산 한 채도 그림 한 점도 얻지 못한다.  이렇게 엄마는 가끔 무실속한 경향이 있다.




무쓸모한 남자와 무실속한 여자는 부모다. 무쓸모고 무실속이면 뭐 어떤가. 출근을 할 때 문간에 나와서 뽀뽀를 갈겨(?) 주고 팔이 빠지도록 손을 흔들어주는 녀석을 보면 그런 거 신경도 쓸 틈이 없다. 예쁘다는 말이 부족한 내 아이. 지금 그 녀석의 통통한 발과 쿰쿰한 머리냄새가 무척 그립다. 시계를 보니 역시나! 퇴근할 시간이다. 집에서 딱 기다려라. 무실속이 간다. 뭐 조금 이따가 무쓸모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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