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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May 19. 2021

냉장고의 앙버터

알아서 더 무서운 맛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는 낮에 사 온 앙버터가 숨 죽이고 들어 있다. 언제고 내가 당신의 뱃속에 들어가 의미 없는 살점을 불려주리라! 하고 있겠지, 요 시건방진 녀석. 하지만 그 녀석은 시건방진 것 치고는 맛이 아주 좋다. 먹어 봐서 안다. 알아서 더 무섭다. 녹진하고 짭짤한 버터에 휘감겨 들어가는 앙금의 달콤함이 탄수화물의 고소함을 만나 내 혀를 강타해버리는 그 맛. 아. 글을 쓰는 지금도 고민된다. 저거 먹을까, 말까. 




하지만 나, 이 닦는 걸 굉장히 귀찮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나면 일절 음식을 먹지 않는다. 여기엔 치실질과 가글도 포함된다. 원체 이가 약해서 이렇게 안 하면 치과 가서 몸고생 마음고생 지갑 고생하기 일쑤니까. 그런데 왠 걸! 무엇의 저주에 걸린 양, 이를 닦는데 앙버터 녀석이 생각난 것이다. 아, 분명 오늘 먹지 않고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묵힌다면, 저 녀석의 고소한 빵껍질은 더욱 딱딱해지고 그 맛을 잃을 것일진대! 이를 닦으면서도, 아이를 씻기면서도, 아이를 재우면서도, 남편과 빨래를 개면서도 이 생각은 더욱 견고해지고 제 힘을 키워갔다. 나를 먹어라, 이 아줌마야! 어차피 살 뺀다면서 빼지도 못한 게 1년이 넘었다! 악마가 속삭인다. 아니, 앙마가 속삭인다.




이런 나를 남편이 구제했다. 내일 체중계의 심판을 달게 받을 수 있겠느냐, 와이프야. 아 당신이 있어 참 다행이다. 덕분에 앙마를 구마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내일 아침 식사가 끝나면 후식으로 앙버터 한 조각을 먹기로 다짐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일은 이번 주의 두 번째 월요일이다. 쉽게 얘기하면 오늘 공휴일이라 쉬었고, 내일 출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출근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아닌가! 아, 앙버터님이 내린 축복 이리라. 내가 냉장고에 딱 버티고 있으니, 안심하고 내일을 맞이하라. 앙버터님이 말씀하셨다. 이래도 내가 앙마냐. 




사는 거 참 별 거 없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오늘이다. 그깟 빵 하나로 고민이 깊어졌다가 행복해졌다가 한다. 빵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삶, 내일은 또 무엇으로 좌지우지될지. 하하. 앙마가 도로 깨어나기 전에 얼른 누워야겠다. 나의 고롱고롱 귀여운 아기가 있는 침실로 스윽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 보련다. 도둑고양이치고는 하나도 안 날렵한 엄마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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