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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나무 Apr 09. 2024

늑막염이라고요?

  2월 무렵부터 무리가 되었나? 가슴 쪽에 빨간 돌기가 솟았다. 가렵지도 않고 번지지도 않고 그렇다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해서, 피부과에 갔더니 대상포진이란다. 왜 통증도 없고 물집도 안 잡힐까요? 요즘 대상포진들은 이렇게 진행되기도 하더라는 말을 듣고, 처방된 약을 열심히 먹었다. 치료가 계속되고 나서도 몸이 좀 힘드네 느껴지고, 계속 장염과 몸살감기를 연이어 앓았다. 이러다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가볍게 시작된 몸살감기가 병원에 들러 약을 지어먹는데도 더 안 좋아지는 듯하더니, 이젠 기침을 하면 온 가슴이 흔들리는 듯하고 기포 터지는 소리가 가슴에서 들리고 병원을 바꿔 약을 먹는데도 좀 우선 하는 듯해도 차도가 보이질 않는다. 폐 ct와 복부초음파를 찍어보니 콩팥, 간에도 물혹이 있고 폐흉막에는 늑막염을 앓은 적 이 있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보아도 좌우가 두께나 상태가 달라 보인다. 긴장한 얼굴로 말을 아끼시는 듯 한 선생님은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며 cd와 진료 의뢰서를 적어주시며 오후에 바로 가보란다. 이제껏 다니며 선생님이 이렇게 긴장하는듯한 모습은 처음이다. 


  겁이 났다. 어리석은 타조가 포식자에게 쫓기면 모래 속에 자기 얼굴을 처박고 제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 남들도 안 보일 거라 생각한다고 했던가.. 바로 가보라고 한 종합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이불속으로 숨었다. 예전 사주를 볼 줄 안다던 동료가 59세에 크게 아프게 될 거라 했던 그때는 웃어넘겼던 말도 떠오르고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OO이사 가면 죽을 거다. 복 없는 년 살만하면 죽는다고 OO으로 이사 가면 죽을 거다 하시더니 이사 가시고 반년만에 돌아가셨던 일도 떠오른다. 


  이제 나도 살만한데 이제 나의 역할, 내가 해야 될 일 다 해놓고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돌아볼 여유도 생기고 이제 멋지게 나답게 살고 싶은 일만 남았는데 겁이 난다. 큰 병이면 어떡하지? 머릿속에는  의사가 했던 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잠이 오질 않는다. 가져가라고 주신 진료의뢰서가 떠오른다.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이용해 해석을 해본다. 보이는 현상만을 기술해 놓고 정밀 검사가 요구된다라고 만 적혀있다.


  아니야 아무 일 아닐 수도 있어, 아무것도 아닐 거야. 너 혼자 온갖 상상으로 스트레스 주지 마, 나를 다독인다. 마음을 털어내자. 혹시 무서운 병일지라도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며 이겨내는 도리밖에 없질 않겠는가. 다행히 무리한 병이 아니라면 이 또한 감사하며 건강관리 해야지, 달라질 것 없는 현실 앞에서 나 혼자 모래성을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인다.  


이른 아침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 컨디션 좀 어때? 며칠 전 감기 이야기 때문에 걱정되어 안부 전화 한 것일 텐데 당황스럽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닐 거야 아휴 내가 끝까지 책임져 줘야 하는 거야? 내가 너 끝까지 책임져 줄게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 밥 먹어!" 씩씩하게 웃는다. 참 고마운 친구다. 아침에 일어나 콩나물 북엇국을 끓이고 돼지고기 야채볶음을 해서 밥을 먹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였던 어느 작가의 젊은 시절 암 투병기를 웹에서 읽었다. 그녀의 담담한 표현에서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이 마천루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월요일 아침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호흡기 내과 입구에서 간호사와 간단한 증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마치고 진료를 받는다. 가져간 진료의뢰서와 CD를 보던 의사는 늑막염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다. 처방해 준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이틀을 먹는 동안 구토와 메슥거림으로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지쳐가고 영혼마저 피폐해지는 듯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병원으로 갔다. 


   입원을 위한 여러 가지 검사와 촬영을 거친 뒤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영양제 수액과 100미리는 되어 보이는 링거병에 든  항생제를 맞았다. 그날 저녁 내내 항생제 부작용으로 헛구역질을 하며 힘들어하는 내게 간호사들은 진정제 주사를 두 번이나 놓아주었다. 며칠이 지나니 이것도 적응이 되는지 메슥거림이나 설사도 진정이 되는 듯하다. 5일째 팔꿈치부터 손등까지 주사자국으로 너덜너덜 해질 무렵 폐가 깨끗해졌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하루 한 알의 항생제와 혹시 모를 지사제와 위장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폐는 다 나았다는데 가슴은 여전히 무겁고 답답하다. 


  이번 늑막염을 앓으며 알게 된 나의 몸상태,  오랜 시간 번아웃을 버텨내며 내가 아직 힘이 있어 다행이라 여겼었는데 무너지고 있었구나 이제라도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내 몸을 살펴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나이 드니 통증에도 둔감해졌는지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 무섭다. 언제나 후순위였던 내 몸 그동안 버텨줘서 고맙고 무서운 병으로 되갚아 주지 않아 고마워, 이제 1순위로 챙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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