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나 자신을 '하루살이'라고 부른다.
하루살이 생활이란, 아침에 일어나면 그 전날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지 싹 다 잊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세상 가장 어려운 마음가짐이었다.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와는 다르게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지난 학기에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힘들었다면, 이번 학기에는 시간이 혼자 저 멀리 달아나서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이다. 물론, 진짜 시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르고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속도는 너무 달랐다. 요즘은 흘러가는 시간의 잡고 잠깐만 멈춰있자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이다.
생각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걸 가장 좋아하는 나이지만, 최근에는 수업 스케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모든 것을 일시 정지시켜 두었다. 오늘은 글을 좀 써볼까 하다가도 쉴 시간이 생기면 침대에 누워서 그저 쉬고 싶었다.
이러다 보니 봄학기를 약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번아웃의 기운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분명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인데 그날따라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메일 하나 확인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평소 같으면 쓱 읽고 말 이메일 하나에 하루를 버텨내는 힘을 모조리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힘을 내야지, 이겨내야지 하다가도 이런 다짐들 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날은 생각보다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날이 찾아왔을 때 힘든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짧아도 3-4일은 힘들어하게 된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하루살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전날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지, 다음날 일어날 때는 마치 오늘 처음 태어나는 것처럼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느낀 감정들을 회피하는 기분이라 이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감정에 쉽게 동요되는 나에게는 꽤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멘탈이 흔들릴만한 일이 종종 생겼다. 언어적인 어려움은 너무 당연하고, 나는 어디에서든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유학생이기에 배려받는 부분도 많지만 어쩔 때는 그 배려가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막고 있는 벽으로 느껴졌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문화적인 차이도 많이 느낀다. 다들 당연하게 알고 있는 배우나 영화, 음악도 내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잘 모른다고 매번 말하는 것도 민망할 정도이다.
과제를 할 때면 이 어려움이 한 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한창 페이퍼를 쓰다가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 잃어버릴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잘 들리던 교수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문제를 읽었을 때 해석이 안될 때는 참 난감하다. 무엇보다 발표가 있을 때 긴장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원래 성격에는 발표할 때 떨리긴 하지만 오히려 즐기는 편인데, 미국에 오고 나서 나는 세상 쫄보가 되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하나까지 곱씹으면서 스트레스받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하나하나에 너무 마음을 쏟다 보면 나만 힘들어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끝난 건 최대한 미련 남기지 않고 빨리 보내주려고 하는 편이다. 아마 미련 없이 지내려는 마음가짐이 하루살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내가 요즘 지칠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는 속담 하나가 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삶에서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라는 의미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속담인데 그 당시 나에게 큰 힘이 되어서 다이어리에도 따로 적어두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만 일어난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나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잘 달래서 보내주는 방법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힘들어도 그 순간을 잘 버텨내면 항상 행복한 순간도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행복이 찾아올 때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나는 오늘의 나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