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 문화강국을 위한 공연예술 정책제안

독일·프랑스 사례 비교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이중 생태계 공연예술정책

by Arete

독일과 프랑스는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제도와 인프라를 갖춘 국가들이다. 그중에서도 공연예술 정책은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기질을 반영하며, 예술가의 노동을 조직하고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상이한 제도적 틀로 발전해 왔다.


독일은 연방주의를 기반으로 전국에 고르게 분포된 앙상블 중심의 공공제작극장과 프리랜서 예술가를 위한 사회보험 제도(Künstlersozialkasse)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를 포괄하는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조성해 왔다. 반면 프랑스는 프로젝트 중심의 유연한 창작 환경이 공연예술 경관을 지배하고 있으며, 간헐적 고용을 전제로 한 실업급여 제도(Intermittence du Spectacle)를 통해 프리랜서 예술가의 사회적 보호를 제도화해 왔다.


본 칼럼은 두 국가의 공공극장 구조와 프리랜서 예술가에 대한 사회보장 체계를 중심으로 공연예술 생태계를 비교 분석하고, 이로부터 파생된 예술적 풍토와 노동환경의 차이를 조망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 공연예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이중 생태계 모델’을 제안한다.



1. 독일의 공연예술 생태계: 전국적 분산과 고용 안정 기반

독일의 공연예술 생태계는 연방제와 지방분권 체계에 기초하여, 공공제작극장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현재 독일 전역 126개 도시에 약 140개의 공공제작극장(Staatstheater, Stadttheater, Landestheater)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약 600개의 객연극장(Gastspieltheater)이 존재한다.

주요 공공제작극장인 주립극장(Staatstheater)과 시립극장(Stadttheater)은 평균 20~40편의 작품을 고정 앙상블을 통해 레퍼토리 방식으로 운영하며, 각 작품은 평균 12회 재공연 된다. 정규 시즌 동안 평균 500회 이상의 공연 및 행사를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지역극장(Landestheater)은 주로 주립·시립극장이 없는 지역연합도시들을 순회공연하는 구조이다.


공공제작극장은 보통 음악극, 연극, 무용극, 오케스트라 등 3~4개 장르를 아우른다. 배우, 음악가, 무용수, 연출, 작가뿐 아니라 무대디자이너, 기술 스태프, 분장, 의상 등 다양한 예술 및 기술 인력을 정규/비정규/단기직으로 고용하며, 이러한 제작극장에서만 약 6만 명 이상이 고용되어 있다. 이는 단순 공연 창작을 넘어 고용 기반의 예술생태계로 기능하는 중요한 근거다.

10만 명 이상 인구를 보유한 도시에서는 일반적으로 300명 이상의 인력이 고용된 시립극장이 운영되며, 슈투트가르트나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1,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형 극장도 존재한다. 이처럼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 전반에 걸쳐 공공제작극장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문화 접근권의 지역 간 형평성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독일 시스템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다만, 이들 극장의 평균 85%가 공적 재정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 주정부의 재정 부담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객연극장(Gastspieltheater)은 대관 및 외부 공연 초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통극장이다. 자체 앙상블은 없으며, 수익 중심의 공연 유통 기능을 담당한다. 기획 및 행정 인력은 약 2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객연극장의 약 50%는 인구 2만~5만 명 수준의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민들에게 공공극장이 미치지 못하는 문화향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을 주요 운영 목적 중 하나로 한다. 이로써 제작극장이 중심이 되는 공공예술 생태계를 유통극장이 보완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이러한 구조 내에서 단기 객원, 초청 예술가 등의 형태로 제작극장과 비정기적이지만 반복적인 협업을 이어간다. 이 외에도 독립 및 사설극장의 프로젝트, 공모사업, 창작지원 프로그램, 레지던시, 축제 등을 통해 자신의 예술활동을 지속하며, 다양한 극장을 오가며 복합적 경로를 통해 생계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프랑스의 공연예술 생태계: 중심지 집중과 프로젝트 기반 운영

프랑스의 공연예술 생태계는 독일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전체적으로 중심 도시 집중 구조와 프로젝트 기반 창작 방식이 특징이며, 공공극장 시스템도 이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총 6개의 국립극장(Théâtres Nationaux)이 존재하며, 이 중 5개는 파리에, 1개는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해 있다. 이들 극장에는 일부 상시 고용된 앙상블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 고용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다. 상시 고용보다는 작품 단위 고용이 일반적이며, 고정 예술 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프랑스에는 38개의 국립연극센터(Centres Dramatiques Nationaux, CDN)가 운영되는데 연출가 중심의 창작 플랫폼으로,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창작자가 일정 기간 동안 극장의 기획과 제작을 주도한다. 상시 앙상블보다는 프로젝트 단위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구조다. 약 78개의 국가극장네트워크(Scènes Nationales)는 자체 제작보다는 외부 초청, 순회공연 중심의 유통극장으로, 지역 문화의 거점이자 공연 유통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프랑스의 공연예술 경관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공공극장 운영도 대부분 단기 계약의 프리랜서 예술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전체 공공극장 종사자는 약 4,000~5,000명 수준으로 추정되며, 독일에 비해 고용 규모가 압도적으로 작고, 정규직 예술가의 비율도 매우 낮다.

공연 제작 역시 장기 레퍼토리 운영보다는 단기 프로젝트, 순회공연, 축제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는 예술의 실험성과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가의 지속적인 고용과 창작 역량의 축적에는 불리한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한 작품이 종료되면 고용관계도 종료되며, 새로운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야 하는 구조 속에 놓인다.

이처럼 프랑스의 공공극장 시스템은 중앙 집중적이면서도 유동적인 창작 구조, 그리고 간헐적 노동에 기반한 유연한 고용 체계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술가의 사회적 보호는 이후 설명될 Intermittence du Spectacle 제도를 통해 보완되고 있다.



3. 고용구조와 사회보장: 공연예술 생태계의 철학적 차이와 지속가능성 과제

독일과 프랑스의 공연예술 생태계는 고용 구조와 예술가 사회보장 방식에서 뚜렷이 다른 철학 위에 설계되어 왔다. 두 나라 모두 예술가의 사회적 보호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삼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과 제도적 구현은 상이하다.


독일: 고용 안정과 보편 사회보장의 조화

독일은 가능한 한 예술가를 정규직 고용 형태로 제도권 안에 포섭하려는 방향성을 견지해 왔다. 연방주의 체제 하에서 각 주(Länder) 단위로 공공극장을 설립·운영하며, 주립극장 (Staatstheater)과 시립극장 (Stadttheater)을 중심으로 형성된 앙상블 기반의 정규직 고용 체제는 예술가에게 안정적인 생계 기반을 제공하고 장기적인 예술 역량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 공연예술을 단발적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노동’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제도적으로 구현된 구조다.


이와 동시에, 제작극장 외부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예술가를 위한 사회보장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인 제도는 Künstlersozialkasse(KSK)로, 1983년 도입된 이 제도는 예술 및 언론 분야 프리랜서들이 직장인과 유사한 수준의 건강보험, 연금보험, 요양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보험료의 절반은 국가와 문화산업계가 분담하고, 연간 3,900유로 이상의 예술소득을 입증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은 제도로 평가된다.


2024년 기준, KSK 전체 가입자는 약 191,100명, 이 중 공연예술 분야 종사자는 약 3만~4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업급여나 산재보장 등 위기 대응 기능이 미흡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일자리 상실이나 부상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생계 보호 기능이 부재해, 위험 부담은 사실상 개인 책임으로 남게 된다.

또한 고정 앙상블 중심의 고용 구조는 일정한 경직성과 폐쇄성을 동반한다. 극장 내부에 예술가가 고정됨으로써 외부 프리랜서나 신진 예술가의 진입 장벽이 생기고, 디지털 전환, 장르 혼종, 국제 협업 확대 등 오늘날 공연예술 환경의 유연화 요구에 비해 제도적 탄력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지적된다. 과도한 고용 안정이 오히려 창작 유통의 역동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프랑스: 실업급여 기반의 간헐적 고용 수용 모델

프랑스는 예술노동의 비정형성, 간헐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며, 이에 특화된 실업급여 중심의 사회보장 체계를 운영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1936년에 처음 도입된 Intermittents du Spectacle 제도다. 이 제도는 상시 고용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연예술 생태계에서, 예술인의 생계 안정과 창작 지속성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예외적인 실업보험 체계다. 자격 조건은 최근 12개월 동안 공연 관련 노동시간 507시간(약 43일) 이상 충족해야 하며, 조건을 충족할 경우 실업 기간 중에도 과거 평균 급여의 약 70~80% 수준의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약 312,000명의 예술인이 해당 제도 하에서 실업급여를 수령하고 있으며, Intermittence 제도는 비정규·단기 노동이라는 현실을 제도 안으로 포괄하여, 유럽 내에서도 독특한 예술노동 보호 모델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진입 요건(근무 시간 충족)이 까다롭고, 자격 갱신이 매년 요구되며 행정적 부담 또한 크다. 대부분의 공공극장이 상시 고용을 거의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예술인이 실질적으로 평생 ‘간헐적 고용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이처럼 독일과 프랑스는 예술가의 고용 및 사회보장에 대해 상반된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각 제도는 자국의 공연예술 구조와 밀접히 연동된 채 작동하고 있다. 독일은 고용의 안정성과 사회보험의 보편성을, 프랑스는 고용의 유연성과 실업 상태에 대한 제도적 수용력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사회보장 체계를 구축해 왔다.


프랑스: 유연한 고용을 전제로 한 사회보장 체계

프랑스는 공연예술이 본질적으로 간헐적이고 프로젝트 기반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는 실업급여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실업급여제도(Intermittents du Spectacle)다. 최근 12개월 동안 공연 관련 노동시간이 507시간 이상을 충족하면, 실업 기간 중에도 과거 소득의 70~80% 수준에 해당하는 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예술가의 이동성과 창작의 유연성을 높이며, 실험적이고 다양한 창작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 공연예술의 생태적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2023년 기준 약 31만 명의 예술인이 이 제도를 통해 실업급여를 받고 있으며, 이는 전체 공연예술 종사자의 과반을 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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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극장과 오케스트라 경영을 공부하고 현재 독일 울름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매니저로 근무중이다. 독일과 한국의 공연문화예술 시스템과 문화정책이 주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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