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를 견디는 아이, 서열끝에서 사회적 감각을 익히다

아이의 거절당할 용기, 함께하는 교사의 공감

by 사유

친구 없는 아이, 눈물 흘리는 부모

교직 생활을 하며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성적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어려운 건 바로, 친구 관계, 사회성,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가 받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부모님과 상담하다 눈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눈물은 대부분, “우리 아이가 친구가 없어요.” “학교가 너무 힘들대요.” 라는 말 뒤에 숨어 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 낮아서 우는 부모는 단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아이를 넘어 가족 전체의 마음에 금을 냅니다.


## 억지로는 안 되는 것


아이의 교우 관계는 어른이 개입한다고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그 관계가 오래가거나, 진짜 친구가 되진 않습니다.


사회성은 스스로 부딪히고 다치고 회복하면서 생기는 힘입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외롭고, 아픕니다. 그러니 교우 관계 문제는 아이도, 부모도, 그리고 교사인 저희도 가장 어렵게 여기는 숙제입니다.


왜냐하면, 내 아이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수많은 아이들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사회성은 ‘연습’이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다가갈 용기, 거절당할 용기


아이들이 속한 또래 집단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합니다. 성적, 외모, 경제력, 인기 등 어른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기준들이 적용되죠.


이 서열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거절당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누구든 거절당하면 상처받습니다. 아이들은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절을 반복해서 겪고, 그 안에서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라는 신호를 받을 때, 다시 용기를 냅니다.


이 도전과 거절의 반복 속에서, 아이는 결국 무리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힘을 얻습니다.


## “싫어”라는 말, 그 뒤의 지도


예를 들어볼까요?


A: “야, 놀자.”

B: “싫어.” 혹은 무시

A: “알았어...” (작은 목소리로)


이 짧은 대화 속에서 A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 순간, 교사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가 아이를 일으킬 수도, 더 주저앉힐 수도 있습니다.


“잘했어. 속상했지? 그래도 다시 해보자. 진짜 친구는 그렇게 생기는 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아이는 그 거절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성의 시작점입니다.


## 거절받을 때의 자세, 조용한 품위


친구에게 거절당했을 때, 아이가 매달리거나 억지로 붙잡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조용히 빠지는 말 한마디가 아이의 품위를 지켜줍니다.


“알았어.”

“괜찮아.”

“다음에 또 얘기해볼게.”


이렇게 짧고 부드럽게 빠져나오는 말투는, 거절의 아픔을 스스로 다루는 연습이기도 하고, 상대에게도 ‘부담 없이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하지만, 사회성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혼자 반복적으로 시도하며 거절을 겪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반의 시도는 반드시 교사가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즉각적인 공감과 인정이 함께해야 합니다.


“마음 아프지? 선생님도 해봐서 알아. 정말 힘든 건데,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너 지금 되게 멋있게 대처했어.”

“그렇게 말하는 거, 정말 어른스럽다.”


이런 짧은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내가 잘하고 있구나’, 그리고 ‘내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심어줍니다.


사회성은 결국 ‘관계 안에서 반복되는 공감의 경험’을 통해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교사의 지켜보는 눈빛과 다정한 말에서 시작됩니다.


## 아이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거절을 견디며 용기를 내던 아이가, 드디어 무리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너무 서두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리 안에 있던 아이들도 마음의 변화와 ‘측은지심’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몇 번이고 거절했던 친구도, 시간이 지나면 미안함이 생기고, 그 안에서 “이번엔 같이 놀아볼까?”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교사는 가만히 지켜보되, 필요하면 살짝 말을 보탭니다.


“이도 계속 노력하더라. 너희가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어.”


이렇게 마음 약한 아이부터 천천히 움직이는 방식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통합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실패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 서열의 맨 끝에서 배우는 것


무리에 들어간 아이는, 너무 들뜨거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차분히 그 안에 ‘따르는 태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남는 거 할게.”

“너희 의견에 따를게.”


이런 말이 사회성 없는 아이를 더 약하게 보이게 한다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미 수많은 거절과 상처를 견디며 사회적 생존 전략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자존심을 지키면서 관계를 맺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습니다.


## 진짜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을 견디고, 서열의 맨 끝에서 눈치를 보고, 오랜 시간 그 무리에 들어가려 애쓴 아이가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친구들이 정말 나에게 맞는 친구들인가?”


관계에 성공했다는 이유로 나와 맞지 않는 무리에 계속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무리를 떠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진짜 사회성입니다.


그 순간, 교사는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네가 친구를 선택하는 거야.”


## 교육은 관계에서 완성됩니다


왕따는 단지 피해와 가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친구 관계는 단순히 사교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감각을 배우는 연습이고, 그 안에 우리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교사인 저는, 그 아이의 시도, 그 아이의 눈물, 그 아이의 조용한 다가감을 알아보고 “다시 해보자”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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