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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바뀌어도 아이들은 자란다

by DJ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단단합니다. 나는 두 아이를 지켜보며 그 사실을 반복해 깨닫습니다. 어른들은 늘 새로운 환경 앞에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 환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른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석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다시 짜 맞춰갑니다. 마치 물이 어떤 그릇에 담기든 자기 모양을 바꾸어 흘러가는 것처럼, 아이들은 늘 새로운 환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아갑니다.


일반 유치원에서 영어 유치원으로 옮겼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언어가 바뀌고 교실 분위기도 확 달라졌지만, 두 아이는 자신들만의 속도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갔습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던 표정이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낯설었던 영어 단어가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변화 앞에서 잠시 망설일 뿐, 결국 그 변화를 스스로의 세계 안으로 끌어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코로나 시절 또한 아이들의 탄력성을 다시 확인한 시기였습니다. 긴 시간 아빠가 곁에 없었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그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뎠습니다. 대만에 와서 해야 했던 격리 생활 역시 어른에겐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환경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일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빠를 따라 대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관광지에서 한국인 주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환경과 언어를 흡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말이 처음엔 단순한 격려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낯선 언어와 새로운 학교라는 큰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의 속도로 무언가를 습득해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중국어를 단 한마디도 모른 채 학교에 들어갔던 첫날, 나는 아이들이 겪을 혼란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교실에서 스쳐 지나가는 친구들의 말, 선생님의 짧은 안내, 거리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조용히 받아들이며 조금씩 자신만의 언어 세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어른이었다면 두려움과 불편함이 먼저 앞섰을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하나의 놀이터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외국어 학교에 옮겼을 때도, 이미 자연스럽게 영어 수업 속에서 자신들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장면은 흐릿해지고, 또 어떤 순간은 또렷하게 남겠지요. 그 기억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성장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잦은 이동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경험 속에서 남들보다 더 강한 적응력과 열린 감각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나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 크게 느낍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유연하고, 넓은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동과 변화가 단순히 ‘환경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속에 스스로를 지탱하는 탄력성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앞으로 어떤 환경을 만나더라도, 두 아이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그 세계에 다가가고, 적응하고, 성장해 나아갈 것입니다.
아이들은 결국 자신만의 길을 만들 줄 아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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