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즐거움은 곧 성과로 이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이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개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에 더 적합한 조언이지, 조직 안에서의 현실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직장은 나의 취향을 실현하는 공간이기 이전에, 타인의 필요를 해결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조직에서 인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을 누가 해냈는가로 평가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대개 다른 사람도 원합니다. 그래서 그 일은 늘 경쟁이 치열하고, 대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남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항상 비어 있고,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조직의 핵심으로 이동합니다.
직장에서의 평가는 감정이 아니라 필요로 이루어집니다. 조직은 언제나 질문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이 일이 멈추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꺼리는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그 일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전문성이 생깁니다.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입니다. 특히 선택의 기준이 ‘좋아함’이 아니라 ‘필요함’일 때 전문성은 더욱 빠르게 축적됩니다. 남들이 피하는 일은 대개 어렵고, 번거롭고, 책임이 큽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고, 알아주는 사람도 적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은 특정 사람의 이름과 함께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그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조직은 복잡한 기계와 같습니다. 모두가 조작하기 쉬운 전원 버튼은 누구나 누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고 고장이 잦고,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손대기 어려운 내부 장치는 다릅니다. 아무도 그 장치를 맡으려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장치를 이해하고 관리해야 기계가 멈추지 않습니다. 그 내부 장치를 맡아 꾸준히 다루는 사람이 결국 그 기계의 작동을 좌우하게 됩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순서가 다를 뿐입니다. 조직 안에서는 먼저 남이 원하는 일을 통해 신뢰를 얻고, 필요를 채우며,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인정받지 못한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길은 분명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외면하지 않고, 그 일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며, 그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은 언제나 부족합니다. 그리고 조직은 결국, 그 부족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