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창조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by 새벽나무

달력을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수많은 기념일이 표시되어 있다. 무슨 기념일이 있다는 건 때론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 년에 단 하루라도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엔 좋은 장치 같다. 매년 4월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면밀히 살펴보면 1년 내내 저작권과 관련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4월 23일 이 날 만이라도 작가들의 피, 땀, 눈물이 응축되어 있는 책들과 작가들의 지적 노동의 대가인 저작권의 개념 등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문화예술계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무대 위에서 현실화하는 것이 일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이 저작권과 매우 밀접한 분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어서야 조금씩 저작권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그 이전에는 저작권의 개념은커녕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한낮의 기온이 연일 30도를 기록하고 있는 여름의 문턱에서 뉴욕 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미국으로 진출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 어워즈(Tony Awards)'에서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작곡/작사),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주연상 등 총 6개 부문 수상의 쾌거를 달성했다는 소식이다. 참여 스텝진이 거의 외국인들이고 비중 있는 투자자도 외국기업이어서 과연 이것을 한국콘텐츠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탄생한 이야기와 감성이 브로드웨이에 큰 감동을 안겼다는 것은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사에 큰 의미가 있다. 드디어 공연분야에도 ‘오징어 게임’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날 BBC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소식을 전하며 "한국은 그래미상(1993, 소프라노 조수미), 오스카상(2020, '기생충'), 에미상(2022, '오징어 게임')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4대 상을 모두 석권했다"라고 보도했다. 지금 전 세계는 한국 문화에 흠뻑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 가장 산업화가 빨리 이루어진 장르가 바로 뮤지컬이다. 뮤지컬 분야는 가장 먼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의 로열티 산정 방법과 티켓 마케팅 방식 등을 따랐고 창작자들 중 한 두 명은 외국의 유명한 스텝일 정도로 글로벌한 제작을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인 작품들과 나란히 자웅을 겨루는 뮤지컬도 초창기에는 주먹구구식 제작이 난무했었다. 특히나 저작권 같은 개념은 거의 없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공연계에서 저작권과 관련해 송사로 확대된 사례는 2000년 뮤지컬 ‘캣츠’ 소송이 대표적이다.


2000년 뮤지컬 <캣츠> 소송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더 리얼리 유스풀 그롭(RUG)이 원작자의 허가와 로열티 없이 공연한 극단 대중에 대해 제기한 것이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이 공연이 1차적 저작물인가, 2차적 저작물인가였는데, 법원은 RUG의 손을 들어 극단 대중의 공연이 1차적 저작물이라고 보았다. 이 판결에 따라 극단은 이미 예정됐던 앙코르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 당시 이 판결은 국내 공연계에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각인시켜 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국내 제작자들은 저작권을 본격적으로 인식하여 해외 작품을 올릴 때 정식 로열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국내 모 대학교의 저명한 무용과 교수였던 안무가 R 씨는 자신의 창작 현대무용을 매년 무대에 올렸는데 1973년 초연부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뮤지컬 넘버를 30년 넘게 저작권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사용하다가 급기야는 2004년 공연 당시 RUG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 이후부터는 RUG의 허가를 받아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메이저 공연기획자나 제작자들의 사정이 이러한데 군소 영세 제작자들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뮤지컬을 제외하고 연극이나 무용 등 기타 장르는 여전히 상업성과 거리가 먼 영세한 규모여서 저작권 소송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분야가 저작권을 잘 준수해서가 아니라 인식이 부족하고 침해 사례가 있어도 워낙 전체 예산규모가 작기 때문에 소송을 해봤자 실익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한류와 K-컬처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법적인 문제를 무시하며 예전처럼 공연을 제작할 수는 없다. 단순히 법적인 제재와 금전적인 손실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은 글로벌 문화를 주도하는 세계시민으로서 기본적인 룰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교육분야에서 저작권 교육을 해야 한다. 눈높이에 맞는 저작권 교육으로 다른 사람의 지적 결과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야 향후 자기 자신이 생산자가 되었을 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80~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저작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슷한 공범의식에 젖게 된다. 학기 초 과대표는 학교 앞 복사집에서 교재를 제본해서 학생 수만큼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종로·신촌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소위 ‘길보드 차트’라고 불리는 복사본 음악테이프들이 즐비했다. 친구의 생일 선물 중 인기 품목은 당시 유행하던 음악을 컴필레이션으로 녹음해서 만들어낸 복사본 음악테이프였다. 이 모든 것이 심각한 저작권 위반이라는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만약 학교에서 저작권 교육을 철저히 시켜줬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가 복제본 책으로 금전적 손실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북적이던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테이프의 엄청난 판매량 수익이 정작 창작자들에겐 조금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그런 생각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개념을 갖기까지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인공지능, AI가 난무할수록 더욱 인간적이려면 창작·창조적인 일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한가운데를 살아갈 우리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저작권 교육을 철저히 받게 하여 남의 지적 노력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지불해야 하고 또한 자신의 권리도 당당하게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전환과 교육 등으로 무장된 저작권이란 어쩌면 모방과 창조 사이를 명확하게 판별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