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이해해 줄 사람이 정말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본인이 되어 보지 않는 이상 기분을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진짜로???
내 기분을 아는 척 흉내만 낼뿐이다.
다들 나에게 말하곤 한다.
나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지. 어쩌겠는가?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세상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차츰차츰 내 위로 올라가는 친구들 및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예전의 어르신들이 나에게 항상 말씀해 주셨던 의미를 새삼 느낀다.
그 뜻이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기 발전 및 반성을 하라는 뜻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몰랐었다.
전쟁을 겪고 사회의 과도기를 겪으며, 온갖 풍파를 겪으신 어르신 분들이
다시는 본인들이 걸어오셨던 길을 후대에는 결코 물려주지 않으리라
후대는 우리 세대보다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오셨다고 감히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겪어보질 못했으니까...
서론이 길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요새말로 ‘꼰대’라고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꼰대질’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순전히 내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마침 글을 쓸 기회를 우연찮게 얻어 이 자리를 빌려 내 이야기를 써본다.
나는 참 군대를 늦게 갔다.
보통 사람들보다 2~3년 늦게 갔으니까.
내가 이등병이었을 때 한 살 어린 전우가 병장 3차 휴가 준비하고 있었으니...
군대에서는 나이 많은 이병, 나이 적은 병장,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으쌰으쌰 도와가며 버티어 나갔다.
이런 게 전우애가 아닌가 싶었다.
이런 기세로라면 전역하고 나서도 사회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과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사회생활을 할 줄 알았다.
딱 저 한 마디가 사회에 내디딘 뒤 처음 느낀 기분이다.
군대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상관없이 누구나가 처지가 비슷했고 한솥밥을 먹으면서
서로서로 도와가며 힘든 훈련을 헤쳐나갔었는데... 사회는 정말 냉정했다.
누가 군대는 작은 사회라 그랬던가...
군대에서는 누구나 전우가 될 수 있었는데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 공부머리 등등 뭐라도 하나 특출 난 게 있어야
사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것을 해보았다.
들어간 곳은 슈퍼마켓.
처음으로 돈을 내 손으로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들떠있었으나
식어버리는 데에는 한 순간이었다.
많은 제품들과 위치 외우기, 진열 속칭 ‘까대기’를 하고 손님들이 위치를 물어오면
대답해 드려야 되고, 진상손님이라도 온다 치면 클레임에 반품까지...
여기 처리하면 저기서 부르고, 저기 처리하면 다른 곳에서 부르고...
그러다가 너무 늦어질 것 같자 다른 분 계산 도와주고 있었는데
나는 요새말로 ‘을’이었다.
‘을’이 맞나?? ‘정’이나 ‘병’ 정도 되었을 거다.
이렇게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며칠을 더 하고 나와버렸다.
그때서야 다른 사람의 기분을 100%는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길로 뛰쳐나온 나.
뭘 해야 될까??
천운이었다.
군대에서 배웠던 컴퓨터가 내 길을 비춰주었다.
그대로 컴퓨터 학원으로 직행하였고 1년간의 학원생활 끝에 수료.
하아....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컴퓨터 직종의 회사를 찾아 이력서를 넣으려 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저 이력 외에도 수상, 입상경력, 기술프로젝트 및 이력서 등등
말도 안 되게 많은 이력을 요구했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될까 고민이 들 정도로...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