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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다로

이어지는 그리움

by 유영해

“우와, 근사하다. 경례 한번 해볼까?”


하얀색 제복을 입은 아이가 오른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눈썹 위로 뻗은 손이 모자를 건드리자, 삐뚤어진 금색 자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사진을 찍으려 켜 둔 휴대전화를 황급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은색으로 수놓은 닻이 정면을 향하도록 머리에 씌우고 사진을 찍었다. 찰나의 어색한 미소로 선장 체험은 끝이 났다. 아들은 부스 테이블에서 연꽃무늬 스티커를 받아 팸플릿에 붙였다. 선명한 햇빛 아래에서 아이는 드물게 신이 났다.


일곱 개의 스티커를 다 모으면 선물로 교환해 준다는 말에 다음 체험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양수산연수원은 남편이 선원 교육을 들으러 자주 오는 곳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오게 된 게 어딘가 신기해서 뒤를 힐끔거렸다. 건물 뒤편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남편이 다가올 것만 같았다. 덮어쓴 모자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매년 열리고 있는 부산항 축제의 중심은 북항이었다. 문 보트를 타러 친수공원에 간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자갈치 크루즈를 타러 영도를 방문했다. 아미르 공원을 오가며 스탬프 투어를 끝내고 평소에는 내부를 볼 수 없는 해군 함정에 올랐다. 산처럼 거대한 선체가 낯설지 않았던 건 얼마 전 함께 탄 남편의 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8개월의 안식년을 마치고 남편은 먼바다로 떠났다. 다시 긴 이별이었다. 꾸역꾸역 짐을 싸고 아쉬움을 담아 멀어지는 캐리어를 배웅했다. 아들은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빠가 집에 없는 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키가 크고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리움의 농도는 짙어졌다. 잠들기 전 아빠를 찾는 모습에 일부러 밍밍한 대답만 골라 했다. 짙은 애정도 시간에 희석되면 기다림의 아픔이 덜해지지 않을까.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에 빠지곤 했다.


상선에도 궁합은 있었다. 처음 타 보는 유조선에 남편은 적응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처음 보는 기계들로 어지러운데 기관장은 다시 한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무리한 업무 부담에 왼쪽 귀는 또다시 이명을 토해냈다. 당장 돌아오라는 나의 닦달에 남편은 한 달 반 만에 육지를 밟고 쉴 틈 없이 회사를 옮겨 다시 배를 나갔다.


나가지 못하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걸 그랬나. 열 손가락의 손톱이 닳아 없어질 때쯤, 이번에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무리하는 건 아닐지 의심했지만, 남편은 거짓말을 하면 금세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얼어붙은 가슴이 간신히 녹아내렸다. 바다 위 수많은 선박 위에서 마음 맞는 동료를 찾아내기란 해적왕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국립해양박물관 앞으로 길게 이어진 데크길에 씽씽이를 탄 아이들이 즐거운 소리를 내질렀다. 단단한 젤리 같은 수면에 아담한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흔들리는 철판을 건너 크루즈에 올라탔다. 배를 오를 때마다 어쩐지 세상과 분리된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승선 시 매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엄마,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요?”


함정에 오를 때도 그랬지만, 아이는 시종일관 덤덤했다. 아이스크림의 단맛에 빠져 웃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에게 배는 더 이상 신기한 장소가 아닌 듯했다. 하얀색 길을 내며 출렁이는 선체에 몸을 맡기고 창문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시금 남편이 탄 배가 떠올랐다. 지금쯤 점심을 먹고 있으려나.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삼시 세끼에 부식이 딸려 오는 선상생활이었다. 함께 지낸 일주일 동안 아이도 나도 손가락 마디마디에 살이 올랐다.


그것은 적지 않은 선원 생활의 첫 동승이었다. 울산항에서 작은 배를 타고 남편의 배가 있는 항구까지 들어갔다. 건너편 육지에서 머리가 덥수룩한 남편이 손을 흔들었다. 무거운 짐가방을 한 손으로 옮기고 나와 아들의 손을 잡은 손바닥은 축축했다. 애틋한 마음이 밀려와 가슴이 뜨끈했다.


본선은 아파트 한 채를 눕혀놓은 것처럼 커다랬다. 광장에 늘어선 수많은 새 차가 끊임없이 배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레이싱 경기처럼 매서운 속도 때문인지, 오랜만에 맞잡은 한 손 때문인지 걸어가는 등이 긴장으로 뻣뻣했다. 건네받은 형광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 입을 벌린 선내를 마주했다. 소금 비린내 사이로 딱딱한 철근이 가득했다. 말랑한 아들을 사이에 두고 서둘러 발을 옮겼다.


“오느라 수고했어. 이거 저번에 캐나다에 내렸을 때 산 거야.”

기름때 가득한 작업복을 던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남편이 선물을 내밀었다. 단풍이 그려진 스타벅스 컵과 메이플 시럽, 탐탐 핫초코 가루라니, 이국의 물건은 언제 봐도 신이 났다. 1인용 침대에 세 명이 끼어 누웠다. 십 년을 넘게 함께 한 사람이건만 오랜만에 보면 손바닥 한 뼘쯤은 어색했다. 그 틈을 아이가 이야기로 메웠다. 앞니가 빠지고 조선통신사 배를 타고 배추흰나비를 키우고 고구마를 심었어요. 두서없는 이야기에 호응하다 보면 조금씩 포갠 몸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더해진 사람 수만큼 불어난 온기가 따뜻했다.


남편이 몸을 일으켜 식당 밥을 가져왔다. 짬뽕이라고 받은 음식은 어딘가 어설펐다. 콩은 단백질을 보충하라고 넣은 건가. 그래도 내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릇을 대충 비우고 남편과 함께 기관실로 내려갔다. 멀리서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열기가 느껴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럴 때는 담임 선생님을 앞에 둔 엄마 같다.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입꼬리를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배를 탄 일주일은 천국 같았다. 남편이 일을 나간 사이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컴퓨터로 글을 썼다. 불안정한 인터넷에도 자판을 두드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운동을 채우러 가져온 노란 줄넘기가 바닥을 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면 시간이 불규칙한 선원 방의 창문은 암막 커튼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아빠가 오면 같이 밥을 먹고 답답하면 갑판을 산책했다. 평택항을 향한 배가 평지처럼 바다를 접어 앞을 향했다. 노을 진 하늘 속 선체의 위용, 커다란 굴뚝과 시커먼 연기, 출항을 알리는 힘찬 기적소리에 압도당했다. 이렇게 커다란 배의 심장부를 움직이는 게 남편의 직업이었다. 새삼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다고 한마디라도 해줄걸.’


아이는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컵라면을 사달라고 졸랐다. 멍하니 값을 치르며 문득 후회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일이 대단하다 칭찬해 본 적이 없었다. 파도를 역행하는 일. 그 동력의 중심에 남편이 서 있었다. 새삼스레 그가 보고 싶었다.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선내는 어느새 틀어놓은 가요에 정신이 없었다. 크루즈에 탄 대부분의 어린이가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는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켜 또래의 막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너도 나가보지 그래? 아이는 정색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언뜻 스친 남편의 모습에 히죽 웃었다. 진저리 치는 표정이 참 닮았다. 부디 건강하게 돌아와 주길. 일상 속 그리움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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