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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바다를 유영하는 법

동승하기

by 유영해

또 다른 동승 허가가 떨어졌다. 새롭게 배를 타고 떠난 지 4개월 만이었다. 근무하는 배가 한국에 들어오면 직계가족은 승선이 가능했다. 매번은 아니고 체재기간이 넉넉해야 했다.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가 '만날 수 있다.'로 변하려면 운이 필요했다. 서둘러 학교에 제출할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인쇄했다. 조금씩 나오는 종이의 끄트머리가 부르르 떨렸다.

일주일이나 학교를 빠질 생각에 아이는 신이 났다. 만나면 투닥거리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내 입장을 펼치자면, 그리운 얼굴이지만 연애 때와는 달랐다. 만나면 즐겁고 신이 났지만, 가끔은 울적하고 보고 싶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알아서 살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챙겼다. 일단 배를 타면 정해진 항구 외에는 내릴 수가 없었다. 짐 검사도 엄격했다. 온종일 방 안에서 뒹굴거릴 거라 여벌옷은 적당히, 속옷만 넉넉히 챙겨 넣었다. 아이 문제집과 장난감을 넣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잔뜩 넣었다. 글을 쓸 때 필요한 노트북과 가족 영화를 다운로드한 태블릿은 필수였다. 쉬는 시간을 벌고 싶어 레고도 샀다. 적어도 며칠은 조용하겠지. 어쩐지 긴 수행에 들어가는 수도승이 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부탁한 물건도 잊지 않고 챙겼다. 널따란 전골냄비와 사과식초를 넣으며 구시렁거렸다.


"또 한 판 요리를 하려나 보군."


선상 생활이란 정해진 일과대로 굴러갔다. 주방장은 보통 필리핀 사람인데 요리솜씨에 호불호가 갈렸다. 애초에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하니 맛에 한계가 있었다. 남편은 종종 주방에서 따로 식사를 준비했다. 다른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해 많이 만들어 동료들과 나눠 먹었다. 인심이 후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후배 기관사와 실기사에는 여자애들도 섞여 있었다. 본심은 이러했다. 적당히 해라.


내일 오전 9시까지 마산항으로 가야 했다. 부산에서 마산까지 가는 택시가 잡힐까 걱정되어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꿀이지! 다들 가고 싶어 할걸?"


답변을 듣고서야 맘이 놓였다. 순간 스친 약은 생각을 말로 뱉어보았다.


"가만, 혹시 내일 일하세요?"

"아니?"


티브이 앞에서 모로 누워있었을 아버지가 졸지에 우리를 마산까지 데려다주게 됐다. 안부전화는 자주 잊은 척하면서 이럴 때만 '감사합니다.'였다. 양심에 찔려 부푼 마음이 푹, 하고 꺼질 것 같았다. 이런 날은 일찍 잠드는 게 수였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남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다. 역시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복잡한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대기 중인 새 차들이 개미떼처럼 보였다. 멀리서 작업복을 입은 앳된 직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눈에 보이는 호의에 남편의 사회생활을 짐작했다. 미소는 주는 만큼 돌아오는 법이다. 넉살 좋은 남편 때문에 덕 보는 일이 많았다. 가끔 과할 때가 있어 문제였지만.


작년에도 승선해 봤다고 거대한 화물선 내부가 내 집처럼 익숙했다. 남편은 혼자서 방을 썼다. 투룸이라 셋이서 잠깐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짐을 다 풀었는데도 남편은 일이 바쁜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기름 넣으랴, 짐 싫으랴. 배는 바다를 항해 중일 때보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가 더 바빴다. 알고는 있었지만, 서운함이 밀려왔다. 선내에 들어오고 나자 맘이 더 조급해졌다. 아들은 당장이라도 기관실로 뛰어갈 기세였다. 뒷목을 탁 쳐서 잠깐 기절시킬까. 보고 싶은 마음만 겹겹이 쌓였다.

남편의 생활 흔적이 방 여기저기서 보였다. 소파 위 이부자리, 흩어진 작업복,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한 번에 휙 정돈했다. 아내와 아들은 육지에 두고 홀아비처럼 생활하는 바다 사나이였다. 몰려온 안쓰러움이 화장실에 쌓아 둔 담배꽁초 앞에서 뿌옇게 사라졌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커지는 심장소리를 누르고 문을 열었더니 후배 기관사였다.

"먼저 점심 드시고 계시랍니다."

작업이 길어졌다는 얘기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20대 중후반쯤 됐을까. 요즘은 젊은 사람만 봐도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은 처음에 "딱 자기 일만 하고, 교류가 없다."며 섭섭해했다. 'MZ세대가 아저씨랑 왜 놀아주겠니.' 싶었지만, 떠오른 생각은 꿀꺽 삼키고 문자로 다독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정해진 사람들로만 몇 개월을 보내야 하는 직업이다. 바다로 떠나보내면 인간관계가 제일 걱정스럽다. 정이 많은 만큼 상처도 잘 받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재밌게 잘 지내."라는 연락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네 주위에는 항상 좋은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아들과 식당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요리사와 인사를 주고받고 식탁에 앉았다. 그날의 메뉴는 오므라이스였다. 케첩이 뿌려진 따끈따끈한 그릇을 마주하고 빙긋 웃었다. 배를 타고 있으면 주방일에서는 해방이었다. 삼시 세끼에 부식이 딸려오고, 설거지도 딴 나라 이야기였다. 다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살이 붙었다. 걱정은 하면서도 입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들내미 칭얼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레고를 꺼냈다. 온 방이 조용해졌다가 다시 들썩였다. 엄마, 어쩌고, 저쩌고. 아빠가 오면 저 엄마 소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여보, 어쩌고, 저쩌고. 스테레오가 하나 더 추가될 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벌컥 문이 열렸다. 사람 탈을 쓴 거대한 곰돌이가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아빠! 상에서 일어난 아들이 달려들자 그가 말했다.

"어어, 다가오지 마. 지금 기름 묻어서 엉망이야."

과연 그의 말대로 작업복은 엉망이었다. 나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가슴팍에 있는 지퍼를 내려버리고 드러난 속살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살갗이 끈적끈적했다. 씻고 온다며 허둥대는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커다란 심장 소리가 파도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보고 싶었다.
몇 십 번의 헤어짐에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






* 이 글은 11명의 등대 작가님들과 함께하는 [아무튼, 남편] 브런치북에 게재된 글을 수정한 작품임을 밝힙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nyway-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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