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마이 선샤인

내가 사랑하는 것 매일 하나씩 기록하기

by Young Ha


지난주 일요일, 공원에서 운동을 마치고 막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였다. 다급하게 카톡 알림이 울렸다. "엄마 지금 통화 돼?" 딸의 문자였다. 급히 집으로 돌아가며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날카로운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잠시 후 연결된 통화에서 딸은 울먹이고 있었다. "할머니가 쓰러지셨어. 지금 응급차로 이동 중이야. 의식이 없으셔."


2달 전, 한국에서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며 "여행 잘 다녀올게. 꼭 건강해야 돼."라고 다짐했었다. 이미 오래전 약속된 가족 여행이라 취소할 수는 없었지만, 여행 내내,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짐을 풀면서도 뭔가 두고 온 듯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었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진 건 꽤 오래전 일이고, 그간 여러 차례 응급실을 오가며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셨기에 이번에는 정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남편이 급히 다음 날 서울행 비행기 표를 구해 주었다. 시카고에서 서울로 향하는 13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휴대폰만 붙잡고 별일이 없기만을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딸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엄마! 근데 할머니가 응급차 타고 가는 내내 이상한 노래를 부르셨대. 구급대원 아저씨가 물어보더라."


엄마가 이따금 의식이 흐릿할 때면 "유 아 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을 흥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는 늘 바쁘셨다.

아마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늘 바쁘셨던 것 같다.,

나는 매일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의 모습을 보곤 했다. 아니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지낸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방과를 마치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문을 나서서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자전거가 보였고 나는 기억을 잃었다.

내가 꺠어난 건 한참 후였고, 나는 어느 병원에 실려왔는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귓가에는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You never know how much I love you...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듯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늘 바빠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던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날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놓칠 수 없는 '선샤인'이었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다행히 의식이 돌아온 엄마가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엄마가 차고 있는 기저귀였다.

작아진 몸에 기저귀를 찬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는 바로 병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옆 구석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는 나를 알아보았지만, 그것이 예전과 같은 온전한 만남은 아니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결국 엄마는 더 이상 거동을 하실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퇴원 결정이 내려졌으나 집으로 모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길고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요양원 침대에 누운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유 아 마이 선샤인'을 흥얼거려 본다.

어린 시절, 사경을 헤매던 나를 붙잡기 위해 엄마가 불렀던 그 노래. 이제는 내가 엄마를 위해 부른다.

제발 나의 태양을, 나의 엄마를 너무 빨리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요양원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엄마가 부디 외롭지 않기를, 당신의 노래처럼 따뜻한 꿈을 꾸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