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모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메이플랜드를 플레이하는 30대 남성 중 한 명이다. 나에게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유행이자 내가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경험을 만들어준 게임이다. 어린 시절 수많은 추억을 만든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는 현재도 계속 운영 중이지만 내가 찾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메이플스토리 월드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메이플랜드다. 메이플랜드는 메이플스토리의 과거형인 빅뱅 전 패치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 월드 창작물 중 하나이며 현재 월드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창작물 중 하나다. 메타버스 콘셉트로 만들어진 메이플스토리 월드의 메이플랜드는 새롭지 않지만 과거를 추억하는 메타버스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한창 메타버스의 대한 이야기가 뜨거웠지만 딱히 성공했다는 사례를 보기 힘들었다. '새로운 산업이다', '4차 산업 시장에 추측이 될 것이다.' 등 여러 가지 성공 예상을 만들어 냈던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어느새 듣기 힘든 단어가 되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일 뿐 사실 메타버스는 살아 있었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가상세계는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상상, 그리고 운영되고 있는 rpg게임도 사실 메타버스의 한 가지다. 메타버스는 자유롭다. 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설정한 시간에서 시작된다.
메타버스는 곧 시간을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추억이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메타버스다. 나는 이 메타버스 안에서 과거를 상상할 때 메이플스토리를 하던 나의 모습과 과거에 직접 플레이하지 않았던 또 다른 빅뱅 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를 상상으로 육성하기도 했다. 메이플랜드는 이런 과거의 추억을 다시 현실로 만들어낸 메타버스라는 것이다. 이미 운영 중인 메이플스토리의 또 다른 과거 시점인 메이플랜드는 과거에 플레이하던 추억을 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나에겐 성공적인 메타버스다.
메이플랜드에 진입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추억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메이플랜드의 성격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과거 메이플스토리는 지금과 달리 솔플이 아닌 파티를 통해서 다양한 퀘스트를 하거나 사냥을 하던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를 해야 하는 성격상 다른 친구를 꼬드겨서 같이 플레이하는 것이 메이플스토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공동의 목표로 싸우거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추억이 생겼고 그런 친구들이 각자 성인이 되어도 생각나기도 한다. 메이플랜드는 과거형이기 때문에 파티플레이를 해야 하는 게임이고 그 상황에서 추억 때문에 들어왔던 또래 친구를 다시 만나며 반가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조건을 따지지 않던 시절 같이 가벼운 만남으로 같은 목표를 함께하던 추억을 가진 그 사람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각자 조건에 따라 다른 취급에, 경쟁에 치여 살고 있는 직장인의 나이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조건을 먼저 바라보게 되고 나의 이득이나 손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들고 사회에 지겨움이 극한에 달한 우리나라 사회에서 같은 목표로 빠르고 쉽게 만나게 되는 파티퀘스트 형태의 게임이 유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의 메이플랜드는 사회에 물든 직장인이 옛 추억과 외로움을 달래는 시스템이기도 하며 새로운 또래의 사람을 큰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흥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사회의 맛을 본 유저층이다 보니 예전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파티를 하진 않는다. 옛 추억 따라 들어온 게임이지만 효율과 손실을 따져가며 게임을 하는 유저가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분까지 같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나는 메이플랜드를 플레이하면서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숨겨왔던 각자의 외로움과 결핍들이 공감과 추억의 공유로 이어져 서로의 상처를 알게 모르게 치유되고 있는 하나의 장소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과거에는 다양하지 않던 같은 학생에서 지금은 정말 다양해진 각자의 직업으로 그 다양함을 하나로 묶는 메타버스 안에서 우리는 사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