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삐쳤고 나는 지쳤고

가족 관계는 끝이 없네

by 오월

너: 동생이 삐쳤는데 이유를 모르겠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


나: 무슨 일인데?


너: 지난가을에 동생이 내 애들이랑 놀아주다가 다쳤어. 집 안에서 술래잡기 같은 거 하면 여기저기 부딪히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한참 뒤에 혹시나 해서 정형외과 가보니 뼈에 금이 갔다더라. 처음엔 깁스만 했는데 나중을 위해 수술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결국 수술까지 했어.


나: 와, 생각보다 심했네.


너: 나도 마음이 안 좋으니까 이것저것 챙겼지. 좋다는 거 이것저것 사서 보내고 연락해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건 했다고 생각했어.


나: 그래그래.


너: 근데 아직도 엄청 차갑고 난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이렇게 저자세로 있는 게 불편해.


나: 아이고...


너: '좀 어때, 아직 많이 아프지?' 이렇게 물어보면 '그럼 아프지, 안 아프냐?'라고 하고, '고생이네,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하면 '너는 놀 거 다 놀고 네 가족만 생각하고, 나만 억울하다'라고 해. 어렵고 불편해서 연락을 조금 뜸하게 하면 남보다 못하대!


나: 제대로 삐쳤네. 지금은 네가 뭘 해도 미운가 봐.


너: 하... 어릴 때부터 가족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고 동생이 원래 가족에 대해 꼬여 있던 건가 싶고, 그럼 평생 이럴 건가 싶고... 모르겠다, 진짜.


나: 네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불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잖아. 오랫동안 네 얘기를 들으면서 언젠가부터 너는 심리적으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졸업했구나 싶었어.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직도 네가 돌봄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건 네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너: 응.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에 계속 얽매여 있는 게 지쳤어. 이제는 그건 됐고, 그래서 뭐, 이제 뭐 하지? 그렇게 태도를 바꿨지. 그리고 부모님끼리 관계에서 전전긍긍하던 것도,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고.


나: 그래. 그렇게 부모 자식 관계는 네가 어느 정도 정리를 한 것 같은데, 동생과의 관계는 아직 깊은 늪 같아. 둘이 사이가 나빴던 적은 별로 없지만, 네가 동생을 걱정하는 방식이 언니로서 동생한테 미안하고 동생을 달래는 형태인 것 같거든. 지금은 동생이 삐쳤으니 그게 더 도드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너: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계속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해?


나: 모른 척이라기보다는, 네가 느끼는 대로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동생이 직접 뭘 원하는지 기다려보는 건 어때? 네가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줘.' 이렇게 대놓고 말해봐.


너: 흠...


나: 예전에 내 비밀을 가족들 앞에서 말한 적이 있어. 내 머릿속에서는 '이거 들으면 가족들이 드라마 찍는 거 아니야?' 싶어서 불안했는데 의외로 (적어도 내 앞에서는) 다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들어주더라고. 그런 경험들이 내게는 가족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너: 음...


나: 이상적인 가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인생을 짊어진 상태에서 가족 안에서 누군가를 계속 달래야만 하는 관계는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 솔직히 달래지는 쪽도 만족을 느낄 것 같지 않고.


너: 참, 가족 관계는 끝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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