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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Nov 22. 2021

자전거와 엄마

재래식 화장실

  



  50년 전 어느 여름방학 나와 언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낑낑대며 자전거에 매달려 있었다.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는데 자전거가 고물인 데다가 크고 무거웠다.

  11살의 이로 자전거를 바로 가게끔 잡아 주는 것은 무리였으나 중학생이 된 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붙잡아 주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남동생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빨리 숨으라고  한다. 엄마가 몽둥이 가지고 우리를 때리러 온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불량배라고 손가락질받을 때였다.

  급하게 남동생에게 자전거를 부탁하고 언니와 나는 교실에 숨으려 했으나 방학이라 교실 문이 닫혀 있는 바람에 화장실에 숨었다.

  35도가 넘는 재래식 화장실은 그야말로 가스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날씨는 더워서  온몸에 땀이 배고 밖에서는 엄마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의 성격을 안 언니와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한 참이 지나 호흡곤란과 함께 여기저기 모기들이 물어서 빨간 발진으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꺽꺽대며

  " 언니 나가서 차라리 맞자. 나는 그냥  맞을래."

 말하고 용기 내어 나오니 엄마는 없었다.

  35도가 넘는 무더위에 숨이 턱 끼지 차오르는  가스를 마셔서 인지 피부는 빨갛게 발진이 올라오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우물에 가서 씻고 또 씻어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이미 옷에 다 배어서 속옷까지 다 벗어야 했다.

  밤이  되어 가려움에 긁고 또 긁는데  엄마는 소주를 묻혀 가려운 곳을 닦아 주셨다. 그러면서 그런 곳에 미련하게

오래 있었냐며 뭐라고 하셨다.

  속으로 엄마 때문에 그 무더위에 벌레에 물려 독이 오른 우리에게 뭐라고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탓에 유독 우리를 예의 바르고 얌전하게 키우려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여자로서 조금만 어긋나면 호되게 혼났다.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을 때릴 때가 많았다.

  어쩌면  당신이 혼자서 자식 다섯을 키우기에 말보다는 매가 더 빨랐을까?

  어려서 엄마가 때릴 때는 엄마가 밉고 야속했지만, 그 매 덕분에 우리 5남매가 이렇게 반듯하게 는지도 모른다.

  이젠 나이가 60이  넘고 보니, 내가 잘못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럴 땐 엄마의 호통 소리와 매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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