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이 선물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풀어 보니 예쁜 빨간색 냄비였다. 생김새가 꼭 구세군 냄비 하고 똑같았다. 작고 깜찍하고 앙증맞았다. 나는 우리 집 구세군 냄비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나부터 돈 만원을 넣고 흰 종이에 매직으로 써서 눈에 잘 띄는 현관 입구에 놓아두었다.
"우리 집 구세군 냄비."
남편이 출근하다 말고 이게 뭐냐고
하더니 한 마디 한다.
"이젠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네."
그냥 나가려고 하는 것을 구세군 냄비 쪽으로
손목을 끌며 구십도절을 하자
더듬더듬 지갑을 뒤지더니 3만 원을 넣었다.
'앗싸' 하면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딸아이도 나오더니
"엄마가 모금하는 거야? 난 2만 원 밖에 없어."
하며 2만 원을 넣어 준다.
심성이 고운 딸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그 냄비를 바라보니
빨간 냄비가 더 예쁘게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했다. 적은 돈이지만 가장 보람되게 쓰고 싶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 쓸 곳이 정해져 나는 현관의 냄비 뚜껑을 열었다.
엥! 거기에는 천 원짜리 두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황당하고 화가 난 나는 식구들에게 전화했다.
남편은 전화를 안 받고, 딸아이는 건망증이 있는 나를 타이르기라도 하듯이 급한 일에 엄마가 쓰지 않았나 잘 생각해 보란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 녀석은 능청맞게 대답했다.
"엄마 제가 불우이웃이에요. 우리 집은 나 빼놓고 다 돈을 버는데 나는 아직 학생이니 노숙자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쓰는 게 가장 적당한 것 같아 제가 썼어요.
그리고 엄마 서운할까 봐 이천 원 넣어 두었어요.
돈 많이 벌면 제가 쓴 돈 열 배로 갚아 드릴게요."
"너 말도 않고 이래도 돼."
소리치자
"말하면 쓰라고 했겠어요. 연말이라 저도 돈 쓸데가 많네요."
"전화 끊어. 목소리도 듣기 싫어."
그럼 그렇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은 격이지 그때 바로 챙겼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나의 어리석음에 누굴 탓하랴! 독거노인에게 보내는 떡은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고 아들 녀석이 들어오면 좋은 일에 쓰도록 말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