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05 돈이 말랐다

퇴직 후 닥치는 일들

by 한우물
퇴직 후 생긴 변화


퇴직 후 생긴 변화 중 제일 먼저 와닿은 것은 신분의 변화이고

그다음에 실감한 것은 호주머니에 돈이 말랐다는 사실이다.


# 2018년 12월

직장 없이 백수 생활한 지 어언 4개월이 지났다.

나는 직장생활 40년 동안,

봉급을 받으면 내가 쓸 용돈과 사회성 경비(?) 내지는 품위유지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던 것이 퇴직 후에는,

매달 나오는 연금과

일 년에 한 번 타는 몇 가지 연금성 보험금과

6개월에 한 번 나오는, 아직은 인세(印稅)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인세 전액을

한 푼도 안 때고 아내에게 바치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내 호주머니에 들어올 돈은 오로지 강의료뿐인데

아직은 무명작가에 불과하다 보니 강의 요청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강의료라는 것도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다.


나는 이런 비상시국을 대비해서

한 1년 정도 버틸 비상금은 그동안 꼬불쳐 두었는데 벌써 4개월이 지나갔다.

자연, 내 호주머니에는 돈이 마르고 그 결과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1) 과거에는 지갑 지저분해진다고 만 원짜리 밑으로는 잘 넣어 다니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지갑 속에 오천 원짜리 천 원짜리가 수북하고 그 한 장 한 장이 다 귀하게 보인다.


2) 과거에는 천 원, 이천 원 정도의 거스름돈은 그냥 됐다 하고 안 받았는데

요즈음은 거스럼돈 몇 백 원까지도 주는 대로 챙겨 넣는다.


3) 과거에는 만 원짜리 이하는 얼굴 거슬려서 팁으로 줘 본 적이 없는데

요즈음은 오천 원짜리도 당당하게 내밀고, 지난번 세차장에서는 이천 원을 팁으로 준 적도 있다.


4) 과거에는 공휴일 날 혼자 집에 있을 때 차려먹기 귀찮아서 점심은 나가서 사 먹었는데

요즈음은 집에서 라면 끓여먹는다.


최영 장군의 가르침을 받든 사람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오만 것 잘 따지고 뭐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하게도 돈 문제만 나오면 마~ 머리가 하얘지고 아예 생각 자체가 하기 싫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숫자가 나오면 그냥 숫자로만 보이지

이것이 얼마나 큰돈인지 도무지 실감이 안 나고 계산도 하기 싫어진다.


왜 그리 되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오로지 최영 장군 때문이다.




대학 교수 중 의과대학 교수만큼 돈의 유혹을 많이 받는 교수도 없을 것이다.


잘 나가는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으로부터의 스카우트 제의,

개업에 대한 유혹,

납품업자들이 내미는 소위 리베이트 등.


하지만,

명예를 가진 사람이 돈까지 거머쥐려는 것은 도둑놈 심뽀고,

학문을 하는 사람이 돈에 눈이 돌아가면 사이비 학자가 되고,

대학교수란 사람이 돈 냄새에 킁킁거리면 인생이 너저분해진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수 하는 동안은

"황금을 보기를 돌 보듯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씀을 받들어

"돈 보기를 돌 보듯 하자."고 맹세했다.


그 결과 나는

교수 생활 중 돈에 대한 잡음 하나 없이 첫 직장으로 들어간 곳에서

그 과 생긴 이래 최초로 정년퇴임식을 치르고 나가는 교수가 되었지만

아내는 조막손에 개미허리가 되었다.




이제 나는 자연인이자 생활인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돈 보기를 돌 보듯 했다간 아내 노후대책도 옳게 못 마련할 것 같아

이제부터는 돈 보기를 금 보듯 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모으기로 했다.


그래서, 2019년 1월부터 한 구멍가게에 몸 팔러 나간다.


지난 35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출근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였는데,

요즈음은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토요일 휴무제가 실시된 후 15년 동안

한 번도 토요일 근무를 해 본 적 없는데,

요즈음은 토요일도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선다.


왜?

돈이 되니까..

2019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