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닥치는 일들
퇴직 후 매일 아침 가장 실감 나는 일은
몸이 좋든 안 좋든, 기분이 좋든 안 좋든, 무조건 가야만 하는 그 어딘가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참 좋았다.
똑같은 시각에 밥 먹고, 무조건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는 부담감 대신
내 먹고 싶은 때에 아침밥 먹고, 햇살 따사로이 드는 거실에서 편안한 소파에 기대앉아
느긋이 차 한잔 즐기는 여유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런 여유도 일주일쯤 지나자 가야 할 갈 곳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는 현실감에
약간의 비참함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서서히 대치되기 시작했다.
이런 지 보름쯤 되어가니
돈도 안 벌어오면서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세 끼 식사에다 간식까지 요구하는 '종간나 새끼' 노릇만 하고 있는 남편에 대해
아내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나는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남편이 집에 있으니 일이 제대로 안 된다.”
“하루 종일 남편이 집에 있으니 돌아서면 밥 걱정이다.”
“어디, 갈 데가 그래 없소?”
이런 말을 몇 번 듣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지금껏 풀리지 않던 의문 하나가 바로 이해되었다.
왜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정네들이 평일 낮에 그렇게 많이들 산에 올라가는지.
그래서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얻어 낮에는 거기서 책도 읽고 글도 쓰려했다.
이런 나의 제안에 "거 좋은 생각이네요." 했던 아내가 다음날 바로 마음이 바뀌어 안 되겠단다.
"당신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내다 버리길 하겠소?"
"당신이 매일 청소를 하겠소? 빨래를 하겠소?"
"그리 되면, 결국 내가 또 두 집 살림하게 되는 거라!”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도서관에 가는 것.
하지만 이것 역시 노트북 때문에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버틸 배터리도 없을 뿐 아니라
화장실 갈 때마다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점심 먹으러 가면서 놔두고 갈 수도 없고...
생각 끝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내가 잘 아는, 나를 왕 같이 대접해 주는 조용한 단골 카페에 가는 것이다.
그곳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지라 낮에는 손님도 잘 없는 데다
홀과 떨어진 곳에 8인 용 룸이 하나 있어
남 신경 안 쓰고 혼자 노트북 펼쳐 놓고 공부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전원 플러그도 있고.
점심도 해결되고.
그런데 첫날 바로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평소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는 그 집 화장실의 소변기와는 익히 안면을 틔운 사이지만
좌변기와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랫배가 뭉글거리더니
그와 만나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일어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좌변실(坐便室) 내부 공간이 너무 좁았다.
나 같은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려면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든지
아니면 하체의 반탄력을 이용해서 한 번에 발딱 일어나야 한다.
그리 되면 몸이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어 좌변기 앞 공간이 넓어야 하는데
그 공간이 너무 좁은 것이다.
순간 난감했다.
'도로 집에 가?'
하지만 차 몰고 20분이나 왔는데,
차 대고, 노트북 가방 들고, 지팡이 짚고, 언덕배기까지 올라왔는데,
오늘부터 낮에 어디 간다고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오자 마자 짐 싸 들고 도로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한테 이 무슨 쪽이냐? @@&#$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지금껏 살아오며 산전(山戰)·수전(水戰)·공중전(空中戰)에 땅굴전까지 치렀는데
이런 것 하나 해결할 방법이 없겠나?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때 떠오른 방법은 두 가지.
비록 왼쪽에 있고 높이도 낮고 손으로 잡고 힘주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문고리지만
그놈을 잡고 몸을 뒤틀며 일어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화장실 안에 사람 없을 때 좌변실 문을 열고 후다닥 일어나서
잽싸게 팬티와 바지를 올리는 것.
그런데…
그때 만일 누군가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더군다나 상대가 여자라면?
좌변기실 공간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을 만큼 좁은 화장실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던 여성이.
바로 눈앞에 생면부지 남성의 성(聖)스러운 성물(性物)과 맞닥뜨린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갑자기 처칠의 유머가 떠올라 혼자 웃었다.
처칠이 75세 때,
한 기자로부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언제고 하나님과 대면할 각오가 되어있다.
하지만 하나님 쪽에서 나와 대면한다는 큰 시련을 직면할 각오가 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이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사람이 보다 뻔뻔해지고 보다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 몰린 늙은 나는 비록 상대가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런 자세로 대면할 각오가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미지의 여성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시련을 안겨다 주는 것은 차마 못할 짓 아니겠는가?
아이고 모르겠다. 무언가 방법이 있겠지….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련은 안 준다 하셨으니 어떡하든 해결해 주시겠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들어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자연의 심판을 받고 난 후,
왼손으로 문고리를 꽉 잡고 오른 손바닥을 문에다 대고
“으랏차차 차차:”
온 힘을 다 짜내어 코브라 트위스트 추듯 몸을 비꼬며 일어났다.
불가능하다 싶었던 일이 가능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역사(役事)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짓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로 이 집은 시마이!"
“그런데~~~ 내일부턴 또 어디로 가지?”
그러자 하나님이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교회를 생각나게 해 준 것이다.
"그래, 맞아. 교회에 놀고 있는 빈 방 많잖아!"
역시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련은 주지 않으시는 분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