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내 욕심이었다.
좀 더 다정한 남편,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힘들지 않아? 자기 고마워. 내가 할게. 하는 유니콘 같은 남편을 꿈꾸고 있었다.
손을 꼭 잡고 걷고 가끔 볼뽀뽀도 해주는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나옴직한 남자주인공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법륜스님 말씀처럼.
내가 고르고 골라 칼 중에서도
아주 잘 드는 날카로운 칼을 골라놓고
그에게 솜도 되라. 왜 솜이 안되냐.
그를 다그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마음을 닫고.
결국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하나 되지 않는 감정소모였을 뿐이었다.
그는 칼이다.
아주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
자기 할 일을 실수없이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고.
더없이 성실하고. 꼼꼼하고. 목표지향적이라 끊임없이 성장해간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낸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힘든 일이 생겨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다.
우유부단하지 않고 정확히 판단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영양제와 좋은 음식도 챙겨먹고 책도 읽으며 스스로를 관리한다.
할 일들을 기한 놓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해내려 애쓴다.
그 덕에 집도 샀고 미국도 왔고
아이는 내가 자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좋은 환경에서 크고 있다.
그가 부드러운 솜이 되길 원한다고해서 내가 처음부터 솜을 골랐다면 만족했을까?
그 솜에게는 왜 칼이 되지 못하냐고.
너는 왜 내 말을 잘 못알아듣냐고. 또 실수하고 흘리고 다녔냐고.
생각이 있냐고. 왜 늘 안주해있냐고. 미래를 위한 준비는 안하냐고.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줄 고민은 안하냐고.
왜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사냐고.
또 옷 허물 벗어놨냐. 그 술친구들 좀 그만 만나라. 정리 좀 해라.
지금 새우깡 먹으면서 예능 볼 정신이 있냐.
다른 사람들한테 퍼주지 말고 선 좀 그어라.
한심하고 답답해 죽겠다고
그 솜에게 와다다다다 구박하며 못살게 굴지 않았을까.
만만하니까 아마 더 쥐잡듯이 잡지 않았을까.
칼인 그에게 더 이상을 바라지 말자.
포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정에 가깝다.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 자꾸 이것도 안해주고
저것도 안해준다고 생각하고 살면
내가 너무 괴롭다.
괴로워하고 싸우고 헤어지면 행복해질까?
솜이 좋다고 칼과 헤어지고 솜을 찾아 만나면 행복할까?
내 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지 편안하게 쉴 둥지만 부수는 꼴이지 않을까.
말이 없다고 말을 더 하라 바라지 말고.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고 말을 더 예쁘고 부드럽게 하라 바라지도 말고.
내 힘든 것 알아주지 않는다고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도 말고.
그냥 이게 당신이구나. 당신은 원래 그렇구나.
그대로를 존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