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남긴 태도로 삶을 읽다
이 글들은 재즈를 듣다 적어둔 메모이자,
인생이 흘러간 방향에 대한 느린 받아쓰기다.
재즈를 듣다 보면
잘 연주하려 애쓰지 않아도,
멈추지만 않으면 연주는 이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음악이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재즈를 자주 듣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적혀 있는 악보는 없고,
방향만 남긴 채
그때그때 다른 선택을 허락하는 음악.
틀리면 다시 돌아가 고치는 대신,
틀린 음을 안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방식.
인생도 비슷하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허설 없는 인생을 살다 보면
늦어진 깨달음 앞에서 후회하기도 하고,
계획을 세웠다가 그대로 되지 않으면
어딘가 실패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재즈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된다.
이 연재는
재즈를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다.
재즈에서 만난 몇 개의 단어를 통해
인생과 마주한 순간들을
조심스럽게 적어보려는 시도다.
즉흥,
어긋난 음,
밀고 당기는 리듬,
잠깐의 침묵,
혼자 맡게 되는 시간 같은 것들.
음악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매번
우리의 삶에 대한 시선으로 도착할 것이다.
재즈처럼
이 연재에도 미리 정해진 결론은 없다.
다만 박자만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흔들리더라도
멈추지는 않기 위해서.
오늘은
그 첫 박자를
조용히 올려놓는다.
오늘의 리듬
In a Silent Way – Miles Davis ( 1969 )
인생을 조금 느리게, 그러나 깊게 연주하는 음악.
The Groove: 인생으로 듣기
의미 없어 보이던 순간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흘러와
어느새 ‘나’라는 담백한 소품곡이 되는 과정.
이 음악은 그 시간을 말한다.
앞에 나서지 않아도,
솔로를 하지 않아도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같은 문장으로
천천히, 반복해 들려준다.
인생은
이해되는 속도가 아니라
들리는 속도로
흘려보내도 된다고,
마일스는 낮은 볼륨으로 연주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그 여백조차
충분히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곡은 알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깊어질 수 있다는 것.
지금 나는 아주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그루브 위에
가만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