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선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이 글들은 재즈를 듣다 적어둔 메모이자,
인생이 흘러간 방향에 대한 느린 받아쓰기다.
재즈에서 Solo(솔로)는
앞으로 나서는 시간이 아니다.
모두가 잠시 물러서 주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Solo는
돋보이기 위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쌓아 둔 호흡을
혼자 책임져 보라는 신호에 가깝다.
연주자는 갑자기 잘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며
리듬을 배웠고,
침묵을 견디며 자기 타임을 익혔다.
그 모든 시간이
Solo를 가능하게 만든다.
인생에도
Solo의 시간이 온다.
조언은 줄고,
결정은 늘어난다.
박자를 세어주는 사람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
하지만 재즈에서의 Solo는
외톨이가 되는 순간이 아니다.
밴드가 나를 믿고
잠시 물러선 시간이다.
Solo를 맡는다는 것은
잘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에 가깝다.
틀린 음이 나와도 연주는 계속되고,
그 음은 다음 음으로 이어질 재료가 된다.
좋은 Solo는 기교를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정직하게 들려준다.
지금의 호흡,
지금의 속도,
지금의 마음.
그래서 어떤 Solo는 조용하고,
어떤 Solo는 짧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빛날 필요는 없다.
인생의 Solo도 그렇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지금의 나로
한 구간을 책임지는 것.
혼자 연주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혼자 버티는 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남에게 넘기지 않는 법을
아는 것이다.
오늘 나는 내 Solo를 맡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 리듬으로 끝까지 간다.
오늘의 리듬
Peace Piece — Bill Evans
The Groove: 인생으로 듣기
이 음악은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조용히 머문다.
낮은 음이 바닥을 만든다.
그 위로 아주 작은 떨림이 지난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듣고 있는 동안
내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다.
앞으로 가는지 머무는지
분간되지 않는 날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하지만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문이 번진다.
Solo.
혼자라는 말이
꼭 외로움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듣는 순간이 있다.
이 음악은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같은 패턴을 돌고 또 돈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기보다
조용히 쌓인다.
쌓인 시간 속에서
설명되지 않던 감정이
이름 없이 떠오른다.
말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면
남는 것이 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내 리듬.
Solo란
혼자 연주하는 장면이 아니라
내 삶이 내는 작은 소리를
스스로 듣는 시간.
그 소리가 생각보다
조용히, 그러나 오래 울린다는 것을
비로소 아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