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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고백

1부(가짜이민)

by 김미현


그날 아침, 광장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분수대 물소리만 조용히 흘러나올 뿐,

사람 그림자조차 드물었다.

며칠을 쫓기듯 달려온 끝에 맞이한 고요한 아침,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빵에 버터를 바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버랜드 같다. 에버랜드에 분수 하나 놓고, 사람 없는 버전.’

농담처럼 아들에게 말했다.


“야, 여기 에버랜드 같다! 그렇지?”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냥 평범한 여행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이 빵을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농담을 받은 것도, 웃은 것도 아니었다.

잠시의 침묵 뒤,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나… 여기서 진짜 살면 행복할 것 같아.”


순간, 내 호흡이 멈췄다.

에버랜드 운운하던 가벼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아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의 들뜸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마음속에서 갈고닦은 결심이, 드디어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이었다.


내 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라고 기도했다.


“정말이야? 독일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학교도, 집도 정해진 게 없는데?

정말 여기서 살고 싶다고?”


질문이 파도처럼 몰려왔지만,

아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들은 한국 학교에서 활발한 아이였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말이다.

학급에서 회장, 부회장을 도맡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늘 중심에 서 있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겉모습은 리더였지만, 뒤에 숨어 있던 아들의 다른 얼굴을.


“엄마,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쓸모없는 사람 같아.”

“나는 자존감이 없어.”


아들이 내게만 속삭이던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런 아들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단어.


“행복.”



나는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아니, 항복했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래. 오자.”


광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분수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내가 감당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짧디 짧은 열흘의 모험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지만,

우리 모자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광장에서,

진짜 이민이라는 낯선 길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열리고 있었다.


#아들의 결심 #행복 #가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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