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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에게 건넨 맥주 한 캔의 나비효과

1부(가짜이민)

by 김미현


열흘간의 ‘가짜 이민’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마지막 과제 앞에 서 있었다.

아이가 다닐 학교 근처, 우리가 살아갈 집을 찾아야 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마침내 한 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오지 않는 집주인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애가 탄다고 연락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기다리고만 있는 나를 보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2015년 6월, 제부도의 바닷가.

그날 우리는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그해 여름, 나는 수술을 앞두고 지쳐 있었다.

막연히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마음속 바다는 언제나 동해였다.

하지만 멀리 갈 기운은 없었으니 그 바람조차 접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제부도 가볼까?”

처음 듣는 이름에 나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결국 끄덕였다.

“그래, 가보자.”


40여 분 뒤, 뜻밖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 위에 반짝이는 물결, 후텁지근한 바람과 짭짤한 냄새.

기대가 전혀 없었던 터라, 오히려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갯벌 끝자락에 한 사람이 홀로 앉아 있었다.

붉게 물드는 하늘을 마주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은 내 눈에 자유로워 보였다.


“저 사람, 사진 한 장 있으면 한국을 더 예쁘게 기억할 텐데…”

내가 중얼거리자 남편이 옆구리를 툭 쳤다.

“좋은 생각인데? 가서 말 걸어봐.”

“싫어. 나 영어 못해.”

“그래도 할 수 있잖아. 학생도 가르쳤던 사람이잖아.”

“아니라고! 나 진짜 왕초보라니까.”


그러는 사이,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Hello!”


뜻밖에도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남편은 다시 옆구리를 찔렀다.

“지금이야! 사진 얘기해.”


머릿속은 하얘졌고,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로 말했다.

“Can I take your picture?”

틀린 영어는 아니었지만,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 시절 나의 영어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한번

몸짓과 눈빛을 섞어,

“Your phone! I’ll take a photo.”


그제야 그 외국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찰칵—

바다와 노을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같은 방향을 걷고 있었다.

“Where are you from? “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짧게

“Germany.”

라고 대답했다.

이야기 소재는 이제 떨어졌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자, 남편이 불쑥 말했다.


“잠깐, 맥주 좀 사 올게.”

“뭐 하러?”

“한국에 온 손님인데, 이 정도 대접은 해야지.”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캔맥주 하나와 음료수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는 그 사람에게 맥주를 내밀며 말했다.

“Welcome to Korea.”


낯선 이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연거푸 말했다.

“Thank you! Thank you!


우리가 내민 캔맥주는 어쩌면

얼마 전 독일에서 아들이 주저앉았을 때, 낯선 독일인에게 받았던 작은 친절, 물병과 같은 것이었다.


그날 제부도의 모래바람 속에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생전 처음 외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엉성한 영어였지만 대화는 묘하게 통했고 우리는 모두 들떠있었다.

바람은 따뜻했고, 모래는 아직 뜨거웠다.


그렇게 이름을 서로 알게 되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으며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 독일인의 이름은 K였다.





K는 글로벌기업의 엘리트였다.

한국 지사가 파격적인 특별 대우로 초빙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K는 좋겠다. 앞날이 탄탄하겠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거의 10년을 그렇게 모시듯 대우하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 소식을 듣고, 설마! 그럴 리가! 믿을 수 없었다.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던 K였다.

유로 연봉을 포기하고, 원화 연봉 계약서를 써서라도 한국에 오래 머물기를 원했었다.


“Finally, I got a local contract.”

(드디어 한국지사랑 직접 계약서를 썼어.)


K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고, 우리 모두 함께 축하해 주었다.

그게 불과 계약해지를 당하기 1년 전의 이야기니 더욱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K는 계약해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고, 이윽고 한국 지사 대표이사에게 모진 말까지 들어야 했다.

“We don’t need you.”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외국살이가 다 그렇지. 진짜 너무 하네. “

우리는 함께 마음 아파했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말할 수 없이 너무 미안했다.




그때 알았다.

외국살이란 언제나 환대와 배신, 기회와 상실이 교차한다는 것을.

제부도의 작은 친절은 여전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동시에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K는 한국에 남고 싶어 하고,

한국의 12살짜리 아들은 독일로 가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우리의 사정을 K가 들었을 때,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독백을 하는 듯,

결심을 하는 듯 말했다.


“That little boy is going to change my life.”

(이 아이가 내 인생을 바꿀 거야.)


때로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을 때가 있다.


그날 제부도에서 낯선 이에게 우리가 내민 그 작은 친절, 환대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비효과 #브런치글쓰기 #이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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