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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Aug 02. 2024

나쁜 딸은 미안하지 않다

내가 착한 딸이 못 된다는 건 열 살 즈음부터 알았다. 하루 종일 일하다 들어온 엄마는 이제부터 집안일을 도우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가 안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나에게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두 살 위 오빠는 남자라는 이유로 집안일을 못 시킨다고 했다. 나는 안 하겠다고 대들었고, 다음날 청소와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어질러진 집안 꼴에 화가 나서 나를 때렸고, 분을 참지 못한 나는 오빠를 때렸고, 열받은 오빠가 나를 때렸다. 오빠와 나는 엄마 앞에서 치고받고 싸웠고, 엄마한테 공평하게 맞았다. 그 뒤로도 엄마는 나에게만 집안일을 강요했고, 못 이기고 내가 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불만은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일을 ‘나만’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내가 오빠를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엄마를 멀리했다. 잘 지내다가도 과거가 소용돌이치면, 들러붙은 찌꺼기를 떼어내기 위해 엄마를 들쑤셨다. 엄마가 짜증을 내면 나는 두배로 짜증을 돌려줬다. ‘싫다’, ‘안 한다’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이러고 사는 건 다 엄마 때문이고 아빠 때문이라며 개지랄을 떨었다. 자연스럽게 나와 가족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가족을 미워했다. 엄마가 너는 왜 오빠를 싫어하냐며 너희 둘은 왜 사이가 안 좋냐며 혼낼 때는 엄마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억장이 무너진다며 가슴을 치면서 나갈 때는 속이 시원했다. 지금도 그림같이 화목한 집안은 아니다. 집안일을 나만 하냐며 엄마가 아빠에게 퍼부으면 아빠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꿋꿋하게 내 방 청소와 내 빨래만 한다. 그 외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다. 스윽 쳐다보고 할 말만 하고 스윽 지나간다. 어버이날이나 생일에 용돈 드린 적 없다. 가족 단톡방, 있을 리가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부모 원망이 사라진 것. 부모님의 일터에서 일을 도운 적이 있다. 그제야 부모님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살기 힘들다 토로하던 마음은, 여유 없이 궁핍했던 생활은, 무뚝뚝한 말투는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나만 억울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제는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도 슬프지 않고 그러려니 한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받은 상처가 많을 것이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효도할 거라고 다짐하지 않을 것이다. 착한 딸이 되라고 스스로 다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딸은 갱생되지 않을 것이다. 진짜 나쁜 딸은 미안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딸을 둔 건 엄마 아빠 팔자소관이다. 나는 나쁜 딸이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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