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시된 일련의 글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실존과 착시, 그리고 그 모순적 결합을 다루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글들에 대해 독자가 공감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반응들이 있을 수 있다.
“난 비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런 내용은 너무 당연하거나, 너무 비약적인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이러한 의견과 비공감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인간의 삶은 각기 다른 환경과 경험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본문에 담긴 개념들은 결코 보편타당한 명제로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읽는 이의 삶과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일종의 관찰 기록에 가깝다.
이 글은 짧은 시간(6시간) 동안 쓰였지만, 그 이전에 오랜 수업 시간 동안의 사유와 메모, 질문의 축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쓰기의 물리적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전에 형성된 철학적 태도와 문제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길어진 문장과 확장된 논리는 허점이나 비약의 가능성도 높인다.
글을 마무리하며 언급하고자 하는 ‘마지막 실존 착시현상’은 다름 아닌, 저자 스스로가 부정적 착시현상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다. 본문 대부분은 ‘부정적 관념으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필자의 삶에서 비롯된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긍정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루기 위한 철학적 역량은 아직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역량이 축적된다면, 긍정적 착시에 대한 탐구와 비판도 시도해 볼 계획이다. 그 역시 인간 인식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글을 통해 다룬 개념들은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발견되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어졌으며, 그 과정은 동시에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는 사유를 멈추고, 배움의 태도로 돌아가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철학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철학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일 역시 중요한 학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종의 정리이자,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연결 고리다.
이후 이어질 본문 2편은 보다 짧고 간결한 단상들로 구성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