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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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온 그림자
청람 김왕식
햇빛이 있는 곳마다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존재를 자주 잊는다.
멀리 떠나 있던 그림자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발치에 드리울 때, 사람은 깨닫는다.
그림자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또 다른 나의 자취였음을.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뛰어놀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긴 그림자가 길 위에 드리워졌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는 나보다 더 커 보였고, 그 모습이 신기해 달려가며 따라잡으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림자는 친구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언제나 곁에 함께 있었고,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존재였다.
청년 시절, 방황의 길 위에서 그림자는 낯설게 다가왔다.
밤거리를 혼자 걸을 때, 뒤따라오는 그림자는 외로움의 표식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때조차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흔들릴 때조차, 그림자는 묵묵히 나의 발걸음을 함께했다.
지금,
그림자는 삶의 또 다른 기록으로 보인다.
밝은 순간에도, 어두운 순간에도 그림자는 늘 함께였다.
우리는 때때로 빛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사실 빛과 그림자는 하나의 쌍이었다.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은 곧 빛이 있었다는 증거다.
그림자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먼 길을 돌아온 그림자는 또한 ‘귀환’의 의미를 품고 있다.
젊은 날 떠나갔던 친구가 세월을 지나 다시 찾아올 때, 잊힌 줄 알았던 기억이 돌아올 때, 그것은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멀리 떠난 줄 알았던 것들이 결국은 우리 삶으로 돌아온다.
그림자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잊혔을 뿐, 다시 빛이 비치면 언제든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인생에서 그림자는 겸손을 가르친다.
우리가 아무리 찬란한 빛 속에 서 있어도, 발밑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없다면 우리는 오만해질 것이다.
그림자는 말한다.
“너는 빛에 기대어 존재하는 존재다.”
그 속삭임 덕분에 우리는 빛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는다.
돌아온 그림자는 또한 화해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 외면했던 기억, 외로웠던 순간도 결국은 그림자처럼 다시 우리 앞에 선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그림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림자를 품는 순간, 사람은 자기 삶의 깊이를 온전히 껴안게 된다.
오늘도 해는 지고, 길 위에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는 속삭인다.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었다.”
먼 길을 돌아온 그림자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을 품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