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사람들》 82화ㅡ'신문 가방을 멘 아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피맛골 사람들》


82편

<신문 가방을 멘 아이>



청람 김왕식





새벽은 골목을 비웠다.

전날의 말다툼과 술냄새가 식었다. 포장마차의 국물은 식었다. 젖은 상자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찍혔다.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불은 배처럼 흔들렸다.

아이의 어깨에 가방이 걸렸다. 가방은 잉크 냄새를 풍겼다. 잉크는 밤새 눌었다. 검은 냄새는 새벽 공기와 섞였다. 아이의 손등엔 잉크가 번졌다. 손가락 마디가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 잉크가 박혔다. 작은 손이 어른의 일을 쥐었다.

아이의 이름은 골목이 알고 있었다. 슈퍼의 아주머니가 안다. 국밥집의 불이 안다. 여인숙 문패가 안다. 다방의 샷잔이 안다. 누구도 크게 묻지 않는다. 아이는 매일 지나가니까. 사람들은 매일 자기 살림을 해야 하니까.

계단은 딱딱했다. 신문은 딱딱한 것과 잘 어울렸다. 문틈은 얇았다. 아이는 얇은 틈을 좋아한다. 얇은 틈이 길을 만든다. 문 아래로 종이를 밀면 하루가 그 집으로 들어간다. 종이는 조용히 들어간다. 아이는 조용함을 배웠다. 말은 물건이 아니다. 신문은 물건이다. 아이는 물건을 다룬다. 물건은 돈이 된다. 돈은 동생의 죽을 끓인다.

바람은 좁은 골목을 파고든다. 아이의 귀가 붉어진다. 목도리는 누나의 오래된 스웨터에서 잘라냈다. 실밥이 허공을 떠다닌다. 아이는 그것을 잡지 않는다. 손은 바빠야 한다. 왼손은 묶고 오른손은 풀어야 한다. 매듭은 어젯밤에 만들었다. 매듭이 흐르지 않게 아이는 매듭을 다시 만졌다.

다방 앞 셔터가 반쯤 올라갔다. 주인은 주전자를 올린다. 물이 끓는다. 유리잔이 소리를 낸다. 설탕이 덩어리로 떨어진다. 검은 물이 끓는다. 아이는 다방 문틈에 신문을 밀어 넣었다. 다방은 늘 새벽에 문을 연다. 밤이 마시던 말들이 컵벽에 붙어 있다. 아이는 그 말들을 보지 않는다. 아이의 눈은 길을 본다.

낙선자의 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벽에 붙은 포스터는 반쯤 뜯겼다. 자취처럼 남은 풀자국이 벽을 얼룩지게 한다. 안에서는 기침이 났다. 기침은 얇고 길었다. 문틈이 움직였다. 아이는 신문을 살짝 밀었다. 신문은 마루의 먼지를 닦으며 밀려갔다. 안쪽에서 손이 나왔다. 그 손은 어제의 손과 같은 선을 가졌다. 가늘고 힘이 없었다. 잠에서 덜 깬 손이었다. 손이 신문을 낚아챘다. 손이 들어갔다. 문틈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이는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며 발을 한 번 접었다. 접은 발을 풀었다. 발목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가방은 점점 가벼워졌다. 가벼움은 끝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끝은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돌아가면 동생이 있다. 동생은 이마가 좁다. 눈썹이 짧다. 입술은 연하다. 웃음은 연한 빛깔을 가졌다. 웃음은 밥보다 먼저 나온다. 밥은 웃음 뒤에 나온다. 아이는 그 순서를 배웠다.

학교 담장이 보였다. 담장 너머 운동장이 있었다. 축구공이 없다. 아직 친구들이 없다. 아직 종이 울리지 않았다. 철봉은 이슬을 들고 서 있다. 쇠는 새벽을 잘 붙든다. 아이는 철봉을 잡고 싶다. 손바닥은 간지럽다. 몸은 매달리고 싶다. 몸은 돌고 싶다. 몸은 어린 몸이다. 몸은 아직 자라난다. 다만 시간표가 다를 뿐이다.

신문이 골목을 따라 흘렀다. 종이는 물처럼 갈래를 만들었다. 아이는 골목의 흐름을 안다. 몇 호 몇 층 몇 번. 박스의 옆에 두 장. 신문함의 위에 한 장. 유리문 앞에는 반으로 접어 한 장. 규칙은 단순하다. 단순한 것은 오래간다. 오래가는 것은 아이를 지켜준다. 아이는 단순함을 좋아한다. 생각이 적으면 실수가 적다. 실수가 적으면 욕을 덜 먹는다. 욕을 덜 먹으면 동생이 덜 운다.

비탈이 짧게 올라붙는 구간이 있다. 그 구간은 늘 위험하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고르지 않다. 수레바퀴 자국이 굳었다. 날이 차가울수록 거기에 얇은 얼음이 낀다. 오늘도 거기는 얇은 막을 올렸다. 아이는 막을 보지 못했다. 아이는 번호를 떠올렸다. 다음 집의 문패를 떠올렸다. 머릿속은 앞서가고 발은 그 뒤를 따른다. 발이 순간 미끄러졌다. 어깨끈이 흘렸다. 몸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가방의 입이 벌어졌다. 신문이 한 번에 솟았다. 새 한 무리가 솟듯이 솟았다. 종이가 하늘로 올랐다. 잉크 새의 깃이 떨었다. 종이가 도로에 떨어졌다. 방금 끓인 국처럼 펄럭이며 떨어졌다. 몇 장은 웅덩이에 빠졌다. 몇 장은 배수구로 빨려갔다. 아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가슴에 박혔다.

골목은 잠깐 멈췄다. 고양이가 멈추고 아이를 봤다. 슈퍼의 셔터가 절반쯤 멈췄다. 국밥집은 뚝배기를 흔들다가 멈췄다. 시간은 늘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넘어지는 것을 지켜본다. 누군가의 하루가 바닥에 흩어지는 순간을. 바닥은 조용하다. 바닥은 모든 것을 안다.

아이는 무릎을 짚었다. 오른쪽 무릎에 구멍이 났다. 천 조각이 얇게 뜯겼다. 피가 천을 적셨다. 아이는 피를 보지 않는다. 먼저 신문을 본다. 물에 젖은 것을 먼저 골랐다. 젖은 것은 팔아도 욕을 먹는다. 욕은 돈을 깎는다. 아이는 젖은 것을 한쪽으로 밀었다. 아직 마른 것이 있다. 마른 것부터 살린다. 바람을 등으로 막았다. 등은 작다. 그래도 막는다. 아이는 신문을 다시 묶었다. 묶으며 숫자를 세었다. 묶고, 또 묶었다. 결이 흐트러지면 다시 폈다. 손이 빨리 움직였다. 마음이 뒤늦게 따라왔다. 마음은 뒤늦게 아팠다.

젖은 신문이 한 장 손에 남았다. 밑면이 검고 무거웠다. 물은 잉크를 끌고 종이 속으로 들어갔다. 글자는 뭉개졌다. 사건은 번졌다. 손가락이 젖었다. 아이는 젖은 종이를 쳐다봤다. 그것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벌금이다. 그것은 한 끼를 닫는 문이다. 닫힌 문은 열 수 없다. 아이는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접고 또 접었다. 사선으로 접었다. 등을 세웠다. 부리를 만들었다. 날개를 눌렀다. 종이가 새 모양이 되었다. 새는 젖어 있었다. 젖은 새도 새다. 아이는 새를 들어 올렸다. 새의 등에서 물이 흘렀다. 아이는 그 물을 털었다. 새는 가벼워졌다. 아이는 한 마리를 더 접었다. 손은 빠르고, 마음은 조용했다. 접을수록 종이는 작아졌다. 작아진 종이는 벌금에서 장난감으로 옮겨갔다. 아이는 속으로 숨을 뱉었다. 숨은 김이 되어 날아갔다.

아이는 남은 신문을 다시 멨다. 어깨끈을 더 안쪽으로 당겼다. 어깨뼈가 끈을 물었다. 통증은 날씨와 흡사했다. 날씨는 겨울이고, 통증도 겨울이었다. 아이는 다시 뛰었다. 비탈은 한 번 넘어지면 쉽다. 넘어짐의 길이 열리면 또 넘어질 수 있다. 아이는 발바닥의 각도를 바꿨다. 바닥의 돌기를 더 많이 밟아야 한다. 균형은 발의 판단에 달려 있다. 아이는 자신의 발을 믿었다.

남은 집들을 채웠다. 늦어진 시간은 아이의 등을 밀었다. 아이는 뛰면서도 문패를 읽었다. 글자를 놓치지 않았다. 실수가 쌓이면 주인은 다른 아이를 부른다. 신문은 사람을 쉽게 바꾼다. 아이는 그 사실을 안다. 사람보다 종이가 중요할 때가 있다. 종이는 사람을 넘긴다. 아이는 종이에게 매달렸다.

마지막 골목으로 들어섰다. 해는 아직 건물의 어깨를 넘지 못했다. 어둠과 새벽의 경계가 몸을 나눴다. 카센터의 셔터가 완전히 올라갔다. 바퀴가 굴렀다. 오토바이가 골목을 비집었다. 배달원과 아이가 스쳤다. 서로의 가방이 닿았다. 쇳소리가 났다. 서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늘 서로의 길을 스치고 지나간다. 부딪치면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면 각자의 계산으로 돌아간다.

아이의 가방은 텅 비었다. 가방은 끈만 남았다. 빈 가방이 더 무거울 때가 있다. 무게는 부피가 아니라 사연에서 나온다. 아이는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 앞에 매면 덜 아프다. 몸은 요령을 배운다. 요령은 살아남기의 지혜다. 지혜는 나이와 관계가 없다. 피맛골은 나이와 관계없이 가르친다.

집은 지하였다. 계단이 눅눅했다. 벽에는 오래된 공고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입주 문의는 오래전에 끝났다. ‘주의, 난방 배관 점검’의 글자가 바래 있었다. 아이는 문을 열었다. 방은 낮은 숨을 쉬었다. 전기가 약하게 켜졌다. 전구가 한 번 떨었다. 아이는 신발을 벗었다. 발뒤꿈치에 검은 먼지가 달라붙었다.

동생이 눈을 떴다. 이불은 얇다. 얇은 이불이 겨울을 버틴다. 동생의 머리맡에는 국어책이 놓여 있다. 책 속에서 잎이 나왔다. 아이가 어젯밤 넣어준 은행잎이다. 노랗다. 말랐다. 얇다. 동생이 아이를 본다. 눈동자는 컸다. 커다란 물이 그 안에 고여 있었다. 아이는 손을 흔들었다. 손끝에서 잉크 자국이 흔들렸다. 동생이 웃었다. 웃음은 조용했다. 웃음은 방의 온도를 올렸다.

아이의 호주머니에는 새가 두 마리 있다. 젖은 새와 마른 새다. 아이는 젖은 새를 꺼냈다. 젖은 새는 아직 등에서 물을 흘렸다. 아이는 그 새를 방의 전등 아래에 세웠다. 동생은 손가락으로 새의 부리를 만졌다. 부리는 쉽게 찌그러졌다. 동생은 다시 펴주었다.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 아이는 마른 새를 꺼냈다. 마른 새는 더 가벼웠다. 동생이 그 새를 머리맡에 두었다. 새 두 마리가 벽의 물때를 바라봤다. 물때는 산맥처럼 보였다. 산맥은 종이 새의 고향처럼 보였다. 고향은 아무에게나 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고향은 있다. 새는 고향을 모른다. 사람이 새에게 고향을 만들어준다.

아이의 배는 소리를 냈다. 소리는 가벼웠다. 냄비는 무거웠다. 쌀은 아침에 조금 남았다. 물이 더 많다. 물이 죽을 만든다. 죽은 식으면 맛이 없다. 식지 않게 빨리 먹어야 한다. 아이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불꽃이 파랗게 솟았다. 파란 불이 냄비의 바닥을 핥았다. 밥 냄새와 잉크 냄새가 섞였다. 냄새는 방의 역사를 만들었다. 가난한 방은 냄새로 말을 한다. 냄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숟가락은 둘이다. 그릇도 둘이다. 아이는 먼저 동생의 그릇을 채웠다. 김이 올랐다. 동생은 조심히 불었다. 입술이 하얗게 말랐다. 아이는 젓가락으로 김치를 잘랐다. 김치는 어제 시장에서 얻어왔다. 사장님은 양동이 바닥을 긁어주었다. 바닥의 김치가 더 맛있다. 오래된 것은 맛이 깊다. 깊은 맛은 오래된 사람에서 난다. 피맛골의 맛은 오래되었다.

식사가 끝나면 시간이 나간다. 아이는 학교로 가야 한다. 알림장은 늘 비어 있다. 학부모 서명란은 빈칸이다. 빈칸은 늘 숙제를 낳는다. 아이는 그 빈칸을 품에 넣고 다닌다. 선생님은 안다. 아이는 말이 적다. 말이 적어도 숙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체온이다. 아이는 체온을 모아 동생에게 준다. 동생은 그 체온으로 잠깐 낮잠을 잔다. 낮잠은 점심 전에 끝난다.

문을 나서기 전에 아이는 새를 다시 본다. 새는 종이다. 종이는 뉴스다. 뉴스는 남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물에 젖으면 새가 된다. 새는 집 안에서만 산다. 집 밖의 바람은 종이를 찢는다. 집 안의 바람은 종이를 세운다. 세워진 종이는 동생의 장난감이 된다. 장난감은 배고픔을 미룬다. 미룬 배고픔은 저녁을 부른다. 저녁은 다시 일로 온다. 일은 아이의 내일을 만든다.

아이의 가방은 다시 비어 있다. 빈 가방을 메고 아이는 학교로 간다. 어깨끈은 가볍다. 가벼움은 고맙다. 길모퉁이에서 운동장 소리가 섞여 나온다. 공이 땅을 친다. 소리가 흙을 일으킨다. 아이는 걸음을 늦춘다. 철봉이 다시 보인다. 이슬이 아직 반쯤 남았다. 아이는 손바닥의 잉크를 본다. 잉크는 손금에 박혀 있다. 손금은 잉크를 품는다. 손금은 길이다. 길은 이미 그어졌다. 길을 지운다는 말은 없다. 길은 덧그린다. 덧그린 선이 또 하나의 하루가 된다. 아이는 철봉을 잡지 않는다. 눈으로만 한 번 돈다. 몸은 앞으로 간다. 몸은 학교로 간다.

점심 무렵 슈퍼의 아주머니가 다방으로 신문 얘기를 전했다. “오늘은 좀 늦었네.” 다방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혼자서 하니까.” 말은 짧았다. 말은 판단을 섞지 않았다. 판단을 섞지 않은 말은 오래간다. 오래가는 말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다방의 주전자는 또 끓었다. 설탕은 또 떨어졌다. 컵받침에 둥근 자국이 겹쳤다. 겹쳐진 자국은 날마다 진해졌다. 진해진 자국은 기록이다. 피맛골의 기록은 대개 둥글다. 누군가의 컵에서 시작해 누군가의 하루로 번진다.

낙선자의 방에서는 종일 고요가 울렸다. 오후가 기지개를 켰다. 방 안의 남자는 신문을 세로로 찢었다. 찢긴 종이로 창문 틈을 막았다. 바람이 덜 들어왔다. 덜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의 먼지를 살렸다. 먼지는 햇살에 춤을 췄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날마다 지는 싸움이 방 안에도 있었다. 지는 싸움이 사람을 살린다. 지면서 버티는 일이 사람을 살린다. 남자는 신문에서 글자를 하나씩 떼어 머릿속에 붙였다. 붙인 글자는 자기 말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붙였다. 붙이는 동안은 숨이 이어졌다.

해가 기울었다.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그에게 숙제를 주었다. 숙제는 늘 시간보다 먼저 온다. 아이는 숙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책상은 낮다. 동생이 올라서서 색연필을 굴렸고, 아이가 공책을 펼쳤다. 종이 새는 여전히 벽을 보고 있었다. 벽의 물때는 산맥에서 강줄기가 되었다. 젖은 새의 등은 말랐다. 말라붙은 잉크가 비늘처럼 남았다. 비늘은 빛을 반사했다. 동생이 그 빛을 손으로 잡아보려 했다. 빛은 잡히지 않았다. 잡히지 않아서 좋았다. 잡히지 않는 것이 사람을 살린다.

저녁이 오기 전에 아이는 신문사 구독소로 들렀다. 젖은 신문 몇 장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 말은 고개를 숙인 목소리로 나왔다. 구독소 사장은 말을 끝까지 듣고 계산기를 눌렀다. 액수는 크지 않았다. 아이의 주머니엔 더 작았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은 서명이다. 서명이 끝나면 뒷문이 열린다. 뒷문에는 버려진 전단지 뭉치가 쌓여 있다. 사장은 그 전단지를 아이에게 밀어주었다. “학 접어. 아우 준다고.” 사장의 말은 짧았다. 짧은 말은 다정할 때가 있다. 아이는 전단지를 품에 넣었다. 품은 따뜻했다.

밤은 골목을 다시 채웠다. 포장마차 불이 살아났다. 국물에서 김이 났다. 사람들의 말이 다시 컵에 박혔다. 다방의 불빛이 창으로 흘렀다. 낙선자의 방에서 기침이 또 났다. 슈퍼는 셔터를 내렸다. 고양이는 지붕으로 올랐다. 피맛골은 밤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의 방에서는 종이가 접혔다. 전단지가 새가 되었다. 빨간 글씨가 날개가 되었다. 초록 그림이 등줄기가 되었다. 노란 세일 문구가 부리가 되었다. 동생의 웃음이 눈이 되었다. 새가 늘어났다. 새는 방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마리는 전등 아래에 섰다. 한 마리는 창턱에 섰다. 한 마리는 동생의 베개 위에 섰다. 서 있는 새들이 고요를 나눴다. 고요는 배가 불렀다.

아이의 어깨에서 하루가 내려왔다. 내려온 하루가 바닥을 적셨다. 바닥은 말없이 받아들였다. 바닥이 받치고 사람이 선다. 서서 버티는 사이에 아이는 내일의 길을 그렸다. 길은 손금 위에 다시 그어졌다. 잉크는 아직 남아 있었다. 남은 잉크로 내일의 선을 더 짙게 그렸다.

창 밖에서 바람이 울었다. 울음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골목의 것이다. 골목은 울음을 모은다. 울음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통을 채운다. 통은 넘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 몫을 갖고 돌아간다. 아이도 제 몫을 갖는다. 몫은 작다. 작아도 제 것이다. 제 것은 지킨다. 지키는 동안 아이는 아이다.

밤이 깊어졌다. 동생이 잠들었다. 입술이 열렸다. 호흡이 일정했다. 아이는 새들 사이에 누웠다. 손바닥의 잉크가 겨울 냄새를 풍겼다. 천장이 낮았다. 낮은 천장이 별을 대신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오늘의 비탈이 뒤로 물러났다. 넘어지던 장면이 멀어졌다. 멀어진 장면 위로 새가 떠올랐다. 종이 새가 아이의 꿈에 들어갔다. 꿈속에서 새는 종이가 아니었다. 새는 새였다. 새가 작은 등을 내밀었다. 아이가 손을 얹었다. 등은 따뜻했다. 따뜻함은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어도 좋다. 좋은 것은 늘 이유를 묻지 않는다.

피맛골의 밤이 다했다. 새벽의 첫 숨이 돌아왔다. 다방의 주전자가 또 끓었다. 국밥집의 불이 또 붙었다. 슈퍼의 셔터가 또 올라갔다. 낙선자의 방의 문틈이 또 움직였다. 모든 것은 어제와 같았다. 같음 속에 조금씩 다른 것이 들어왔다. 아이의 가방은 다시 무거워졌다. 무거움은 삶의 체중이다. 삶은 체중을 올린다. 체중이 사람을 땅에 붙인다. 땅에 붙은 사람만이 골목을 걷는다.

아이의 어깨에 끈이 다시 걸렸다. 끈은 어제의 자리를 찾았다. 자리에는 새 자국이 났다. 자국은 흉터가 아니다. 자국은 길이다. 길은 늘 이어진다. 이어지는 동안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꺾이면 다시 세운다. 세우는 일은 손이 한다. 아이의 손은 잉크와 종이와 밥과 불을 동시에 만진다. 손이 하루를 만든다.

문이 열렸다. 아이가 나왔다. 바람이 아이의 귀를 스쳤다. 귀가 붉어졌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새벽은 늘 같은 하늘을 올린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아이는 다시 걷는다. 가난은 아이의 어깨를 누른다. 누르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는 걸음을 세운다. 걸음은 어제보다 반 발 앞선다. 반 발이 하루를 바꾼다. 하루가 쌓이면 계절이 바뀐다. 계절이 돌면 몸이 자란다. 자란 몸이 길을 넓힌다.

아이의 주머니에는 종이 새가 한 마리 있다. 어젯밤 남은 작은 새다. 아이는 새를 다시 만지지 않는다. 새는 동생의 것이다. 아이는 그것을 돌려줄 것이다. 돌려주는 마음이 아이를 세운다. 아이는 자신이 아이임을 안다. 어른의 일을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지킨다.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피맛골의 내일을 밀어 올린다.

골목이 길어졌다. 빛이 길어졌다. 신문은 또 하루를 들고 아이의 손에 왔다. 아이는 그 하루를 사람들의 문으로 나눴다. 문마다 새벽이 들어갔다. 들어간 새벽은 각자의 국물과 각자의 숙제로 끓었다. 끓는 소리 위로 아이의 발소리가 얹혔다. 발소리는 가볍다. 가볍지만 오래간다. 오래가는 소리가 사람을 살린다. 오늘도 그 소리는 길을 만들었다. 길은 아이를 앞으로 보냈다. 앞에는 늘 동생의 웃음이 있었다. 웃음은 종이 새의 눈빛과 닮았다. 그 눈빛 하나면 한낮의 무게도 버틸 수 있었다. 가난은 아이의 어깨를 눌렀다. 순수는 아이의 등을 세웠다. 등은 오늘도 곧게 섰다. 아이는 앞으로 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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