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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채 Oct 15. 2024

4. 기다림의 시간•3

두 번째 유산

어느덧 해는 바뀌고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검사와 인공수정으로 달려온


1여 년간의 시간이 참으로 피로했다.


기대를 했다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감정의 소비가 알게 모르게 컸다.



이제 나에게 남은 다음단계는


시험관시술_


인공수정보다 몇 배는 힘들고


확률은 훨씬 높다지만...


난임병원을 찾았을 때의 작은 희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졌다.



'됐으면 진작에 됐을 테지..'





확률 높은 시험관까지 실패하게 되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시험관으로 인한 희망보다


실패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몸도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했다.



몇 개월 병원을 쉬었다.


온통 임신생각뿐인 머릿속을 지우고 싶어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아이러니하게 임신생각을 지우려 하니


또다시 자연임신으로 두 번째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첫 번째 아이를 갖고 약 2년 만이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또 잃을까 아주 많이 두려웠다.


그렇게 두려움으로 시작된


두 번째 아기를 지켜내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고 나의 문제였던


nk cell수치를 낮추기 위해


면역글로불린을 맞으면서 한 주 한 주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삼신할머니가 시샘할까 봐


태명은커녕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다.


우린 안정기를 기다렸지만...


12주가 됐을 무렵


아이를 보내 주어야만 했다.


사람형상을 하고 팔다리를


꼬물꼬물거렸던 모습이 이토록 생생한데...



왜.. 도대체 왜....



의사왈, 12주는 수술하기에는 


기존 유산수술 경력도 있고


자궁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몸이 안전한 방향을


논하고 있다니 인생 참 덧없다..


허망하고 공허한 마음뿐_





그때 의사의 마지막말이


계속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프고 또 아플 테지만


○○○씨는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될 것을 난 알아요.


그 어떤 엄마들보다


사랑 넘치는 엄마가 될 거예요.


내가 장담해요."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두 번째 아이를 보내던


그날 이후


그때의 기억은 마음속에 묻었다.




그렇게 허전해진 배를 움켜쥐고


남겨진 나는


큰 기억 없이 일상을 살아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다.


마음속에 박힌 아픈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올까 봐


정신을 딴 데로 팔기 위해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다.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흘렀고,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묻었던,


보듬지 못했던


나의 마음상태와 마주하고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기에게 편지를 썼다. 




•••

잘 가..


힘든 적이 많았지만


참 많이 울었지만


생각해 보면


분명


행복한 적도 많았어.



드러내기 싫어서,


위로받기도 두려워,


위로받으면 내가 무너지니


나는 나를 보호하고자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혀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지.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한 해가 너를 보냈을 때야.


이렇게 까지 낮아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아가 남아있긴 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이 위태로웠어_



2박 3일 동안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그 속에서 


3개월 된 너를 잃었지.


여전히 팔다리가 꿈틀대는 모습이 기억나


다른 이의 초음파도,


갓난아기 보는 것도 힘들구나_


네가 너무 소중했기에 소문낼 수 없었어.


금방 왔다  또 사라져 버릴까 봐..


태명도 못 지어주었어.


어떤 태명을 지어줄까


매일밤 고민했을 정도로 소중했으니깐.




그런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많이 많이 소문내고 축하받을걸.


축하해 줬을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따뜻한 축하도 받지 못하고


태명 한 번도 불러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가게 해서 너무 미안해.



그게 그렇게 미안했었는지


훌훌 털어내지 못하고


지금껏 아파했던 것 같아.


미안해 아가야_


너무 늦게 미안하다고 말해서 미안해_


시간이 필요했어_


올해가 가기 전 꼭 전하고 싶었어_


그게 오늘이 되었네_



아주 많이 행복했었고


잠깐이라도 우리에게 와주어서


고맙고


그렇게 가게 해서 또 미안해_










아무리 이해하고 위로한다 해도


아이를 잃은 마음은 잃어본 사람만 안다.


그 아픔은 가늠할 수 없다.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아파해주지만


그 위로를 받는 나는


순간은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돌아와서는


허망함과 뿌리 깊은 공허함을


혼자 이겨내야 했다.


아이를 잃은 그 해 지독히도 혼자였다.


아주 지독히도_





돌이켜보면.. 나에게 꽤 긴 시간


두 번의 이런 시련이 주어진 것은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약한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더 멋있고


더 강하고


더 사랑이 많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 같다_


준비할 시간을 주신 것 같다_



지금은 모든 것이 감사하다_


깨달은 것이 많다_





앞으로


더 멋있어질 수 있는 계획이 생겼고,


여전히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이렇게 글로 옮겨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으며


사랑은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가야 덕분에 한 뼘 더 자랐어."




나는 그렇게


응어리진 아픔을 토해내듯


글을 써 내려가면서 펑펑 울었고


나의 두 번째 아가를


마음속에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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