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빵모자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여차하면 눌러쓰고 찬 기온에 맞서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머리가 눌리거나 형태가 변한다는 이유로 모자자체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내 서랍에는 대여섯 개 모자가 옹기종기 계절을 기다린다. 빵모자를 내가 선호하는 이유는 딱 하나, 따뜻해서다.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어미가 딸을 보호하듯 몸을 돌보는 생존형 선택이다. 머리 모양이 망가지는 것 정도는 건강과 무관한 사소한 이유가 된다. 일상에서 빵모자를 애용하기까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건강 회복이 전부였던 때, 쏟아지는 조언들과 관심들이 짐으로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기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런 경험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모든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나다운 선택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내게 모자가 어울린다고 하지만 모자쓴 모습에 익숙해진 거라고 생각한다. 수년간 썬 크림 대신 모자를 쓰고 다녔으니……. 게다가 염색도 하지 않은 반백 머리보다 모자로 가려진 내 모습이 좀 더 젊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울린다는 말은 더 예뻐 보인다는 뜻도 포함된 듯하다.
11월, 빵모자를 꺼내놓았다. 아직 머리가 시린 기온은 아니지만 추위에 약한 내겐 안전장치와도 같다. 지난 겨울은 벽돌색 모자를 주로 썼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검정색이 사라졌다. 검정색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유야무야 소홀히 한 탓일 게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아는 게 이상하지 싶어 찾으려는 생각도 접었다.
생명 없는 물건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제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것 같아 피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