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연습 ① — 열 해의 경력 앞에서, 다시 0으로
마흔이 됐다. 그리고 다시 처음이다.
웹 디자인 8년, 퍼블리셔 2년. 합치면 10년이다.
나름 한 분야에서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다시 시작점에 서 있다.
처음부터 퍼블리셔였던 건 아니다.
웹 디자인을 오래 했다. 하지만 솔직히 벌이가 좋지 않았다. 연봉이 조금이라도 높은 쪽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퍼블리싱에 눈이 갔다. 코드라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HTML, CSS를 익히고, 조금씩 실력이 붙었다. 그렇게 퍼블리셔로 전향했다.
운 좋게 회사에 들어갔다. 2년 3개월을 다녔다.
그런데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월급이 한 달 밀렸다. 그다음 달도 밀렸다. 곧 정상화된다는 말만 반복되다가,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밀린 월급은 받지 못했다.
허무했다. 열심히 다녔는데, 남은 건 실업급여 신청서뿐이었다.
그래도 멈추진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더 잘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JavaScript를 파고, 더 깊이 들어가려 했다.
그때 생성형 AI가 등장했다.
처음엔 신기했다. 그런데 곧 무서워졌다. AI가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나보다 빨랐고, 틀리지도 않았다. IT 업계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는 줄어들고, 남은 자리는 시니어급만 찾았다. 5년 이상 경력, 고급 기술 필수. 그 정도 되려면 또 1년, 2년을 공부에 쏟아야 했다.
그런데 그사이에 AI는 얼마나 더 발전해 있을까.
계산이 안 맞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AI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시니어들도 불안해하는 판에,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방황하던 어느 날, 지인에게 이 얘기를 털어놨다.
한참을 들어주더니 그가 말했다.
"시야를 좀 넓게 봐."
단순한 말이었는데, 묵직하게 들렸다. 생각해 보니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는 한 방향만 보고 있었다. 거기서 안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게 유일한 길일까.
며칠을 곱씹었다.
그리고 떠올랐다. 웹 디자인. 내가 8년을 했던 일.
찾아보니 웹 디자인 쪽은 아직 채용이 있었다. 퍼블리싱보다 일자리가 많았고, AI와의 경쟁에서도 아직은 숨 쉴 틈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나는 그 일을 해본 사람이었다.
예전에 했던 거니까. 다시 처음 마음으로 공부하면 금방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불안하다.
8년 전의 웹 디자인과 지금의 웹 디자인은 다르다.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이 변했다. 나이도 마흔이다. 이력서에 적힌 경력은 애매하고, 연봉은 깎일 게 뻔하다. 나를 써줄 곳이 있기는 할까.
이런 생각이 매일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손 놓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해도 뭐라도 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계산을 하고, 고민을 거듭해도 결국 스타트를 끊어야 결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가보려 한다. 실패하면 수정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다른 문을 두드리면 된다.
마흔에 새로운 도전이다.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