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름 그날

- 나의 아버지

by 삐삐오기

그날 버스정류장은 진짜 더웠다.

여름휴가를 대구에서 보낼 생각을 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며 속으로 얼마나 구시렁댔는지 모른다. 전 정류장의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버스는 가까이 있었는데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3만 원 주고 산 기내용 캐리어는 싼 가격만큼이나 기능도 단조로워서 굴러가기는 하는데 바퀴가 2개밖에 없어 방향을 잡고 끄는 데 꽤 힘이 필요했다. 오래 쓰겠다고 미처 벗겨내지 못한 비닐이 얼룩덜룩하게 무슨 무늬가 된 거 같기도 했는데 바람에 나불대는 꼴이 퍽 보기 싫었다. 집에 가면 당장 저 캐리어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끄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아예 신줏단지처럼 들고 저만치서 오지도 않는 버스와 시계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무엇인가에 괜한 화가 난 나머지 그런 아버지를 타박했다. 끌면 되는 걸 왜 들고 있느냐고. 시골집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도 30분은 나가야 지하철역이 나오고 거기서 30분을 더 가야 기차역에 도착했다. 고작 서울까지 가기 위해 나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다.


드디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버스가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가방을 달라고 했지만 끝내 지하철역까지 함께 가겠다는 듯 아버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함께 버스에 올랐지만 먼저 탄 나는 뒷문 근처에 앉았고 아버지는 앞문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쳐다보고 있자니 절로 나오는 한숨과 함께 조금 전의 그 화가 또 밀려왔다. 버스에 앉은 아버지와 나의 거리, 딱 그만큼 우리가 보낸 세월에도 거리가 있었다.

개발이 한창인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의 덜컹거림에 멀미가 이는 것 같았다. 창밖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도 같기도 하고 막 변해가는 것 같기도 한 그 중간쯤 어디였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우리 시골은 절대 개발이 안 되는 지역이라고 말하며 어디 가서 대구시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분노했던 일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어쩌면 내 고향은 여전히 덜 자란 듯한 나와 닮았다. 대구집만 내려오면 나는 아직 스무 살 이전에 머물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만난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 시절에 나는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이질 못하는 나를 어쩌지 못해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그저 힘들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살가운 사람이 아니여는데,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술과 폭력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고 내가 조금 자랐을 때는 무능함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별로 없었던 아버지는 어쩌면 그 시절 평균적인 아버지처럼 살지 못하고 한 십 년은 더 옛날 아버지처럼 살았다. 나는 그것이 몹시 싫었다.

IMF를 막 시작하던,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독립하겠노라고 선언하던 날에도 아버지는 딱히 말이 없었다. 지낼 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면 살 것인지 묻지도 않았고 염려가 된다는 그런 흔한 말도 없었다. 그것이 암묵적인 허락이었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불가의 뜻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짐을 꾸렸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녹색 트렁크를 들고 집을 나서던 날도 아버지는 새벽부터 동네 시멘트 공장에 품을 팔러 갔다.


지하철역이 있는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버스가 채 멈추기도 전에 아버지는 신줏단지 가방을 안고 일어섰다. 버스 기사가 차가 멈추면 일어나라고 넘어진다고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가서 팔이라도 잡아야 하나 생각할 때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때의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의 살가움을 없는 성격을 내가 물려받은 거라며.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한참 뒤 아버지가 내민 건 흰 비닐봉지에 담긴 건 청포도 맛 사탕 한 봉지였다. 무슨 날마다 아버지가 짜장면과 함께 사준 사탕이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받아 들고 입구로 향했다.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그저 윙윙대는 지하철역 환풍기 소리가 몹시도 시끄러웠는데 더위가 섞인 바람이 불어 상의 사이로 드러난 팔뚝이 눅진했다는 것, 부슬대는 비가 흩뿌리듯 내려 안 그래도 꼬불꼬불한 앞머리는 더 곱슬거려 무척 신경이 쓰였다는 것, 털어내고 싶은 마음으로 내려온 지하철역 안 에어컨 바람은 무척 시원했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추석 때 와라, 꼭 와라.”라던 세월이 담긴 그 목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