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휩쓴 인공지능’
‘물리상과 화학상까지 올해 노벨상은 AI가 평정’
‘기계가 스스로 학습’
‘생명공학 분야 60년의 난제를 수학으로 풀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수학.
요즘 하루라도 이 단어를 듣지 않는 날이 있을까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플로랜스’ 라는 곡인데요.
이 노래는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감지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시대, 여명, 밝아옴.
이런 심상을 떠올리면 가슴속에 환희와 기쁨이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쪽면만을 바라봤을 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곳, 내가 배운 지식, 내가 믿는 가치.
이 모든 것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아침이라면, 눈 뜰 때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 적개심, 이제까지 배웠던 모든 지식이 거짓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성스럽다고 여겼던 것이 속이 되고 속이 성이 되는 전복의 순간, 녹슨 성배만 쥔 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배에 올라타야 한다면.
그건 마치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 아닐까요.
‘루터라는 사람이 신교를 썼소. 그리고 우리는 분열되고 있는 세상의 새벽에 서 있네.‘
십수 년 전 뮤지컬 공연에서 처음 접한 노래이지만, 아직까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노래는 2막의 첫 곡으로 인터미션 동안 현실세계로 돌아갔던 관객들을 시대극의 한복판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은 15세기 파리의 시테섬입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인 프롤로가 희곡 작가이자 음유시인인 그랭구아르에게 묻습니다. 지금 플로렌스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플로렌스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뜻하고 그 당시 피렌체에선 르네상스가 꽃피고 있었죠.
‘그곳에선 땅은 둥글고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나가면 새로운 대륙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떠돕니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로 매초마다 신약성서와 인쇄물이 쏟아져 나오고 누구나 글을 보고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전처럼 여럿이 모여 하나의 생각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에서 여러 생각이 탄생할 것‘이라 말합니다.
그랭구아르와 프롤로는 책을 위시한 집단지성이 위대한 건축물 즉, 종교를 무너뜨릴 거라 노래합니다.
천년의 중세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를 때, 구시대의 파수꾼이 되어버린 프롤로가 심연으로부터 느꼈을 지각변동을 가늠해 봅니다.
새로운 시대.
과거의 학문은 경계가 없었지만 지구부터 달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축적되면서 학문은 분열되고 그 사이에 담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 바쳐도 모든 책의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만큼 지식은 방대해졌습니다.
그러다 신체의 한계를 초월한 인공지능이 등장했고 닫혀있던 학문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새로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먼지 덮인 도서관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혹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곤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왜 그래? 이건 틀린 것 같은데?
경계가 무너지고 믿었던 것이 거부당하는 북새통 속에 당황하는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동시에 쏟아지는 질문에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답하는 사서를 상상합니다.
즉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새로운 사람들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숲처럼 방대한 도서관을 밝은 눈으로 안내합니다.
그런데 사서가 사는, 도서관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시대의 신부 프롤로는 자신이 딛고 서있는 땅이 흔들리더라도 듣기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래도록 그의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리고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던 그의 가슴을 빌리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롤로_
‘플로렌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오.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해서도... 그리고 단테의 지옥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