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19. 관계의 숨통, 이해라는 여백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나는 생각보다 자주 인생을 계산했다. 이만큼 주었으니 이만큼 돌아와야 했고, 이 정도 애썼으니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만 했다.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조차 손익계산서처럼 정리하려 했다. 손해 보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고, 남는 게 없는 일은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계산은 삶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고, 나는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계산이 관계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 얼마나 자주 마음을 썼는지, 내 말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하나하나 따져야만 했다. 이해보다 해석이 앞섰고, 공감보다 판단이 빨랐다. 상대의 말 한마디가 어긋나게 들릴 때면, 그의 속내를 묻는 대신 마음의 채점판에 차가운 감점을 기록했다. 대화는 소통이 아닌, 서로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소모적인 청문회로 변해갔다. 친절은 의무가 되었고, 호의는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그렇게 관계는 조금씩 무거워졌다. 겉으론 평온했지만, 속으론 셈이 맞지 않는 장부의 기록들처럼 불편함이 쌓여갔다.

결정적인 순간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아왔다. 나는 헤아림 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상대는 충분히 애썼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계산서를 들고 있었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음을 닫았고, 상대는 이유를 모른 채 멀어져 갔다.


한참이 지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혹시 나는 상대를 이해하려 한 적이 있었을까.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날 연락이 없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침묵했는지를 헤아려본 적이 있었는지. 이해는 계산보다 훨씬 어려웠다. 정답이 없고, 시간도 필요했다. 내 감정을 따지느라 상대의 사정은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내가 잃은 것은 상대가 아니라, 이해라는 포용적인 태도였다.

그 후, 나는 조금씩 달라지려고 했다. 곧바로 모든 일을 판단하지 않고, 쉽게 단정짓지도 않았다. 관계 속에서 계산이 떠오를 때마다 한 번은 더 묻기로 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마음 속의 질문이었다. 계산은 나를 똑똑하게 보이게 했지만, 이해는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 마음은 언제나 숫자보다 복잡하고, 그 복잡함을 감내할 때 비로소 관계는 숨을 쉬었다.

우리 인생에서 꼭 필요한 능력은 셈이 아니라 여백이다. 계산보다 이해를 선택하는 순간, 관계는 다시 살아나고 삶은 조금 덜 날카로워진다. 그래서 나는 계산기를 내려놓고, 마음을 한 칸 비워두기로 했다. 누군가 들어와 앉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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