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얻은 것들의 계산서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길을 걷다가도 ‘무료’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값을 치르지 않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요즘 휴대폰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기기 값은 무료라는 말을 종종 보게 된다. 공짜를 기대하는 마음이 구매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휴대폰 가게를 들어가면, 대신 약정기간과 요금제가 단단히 붙어 있었다. 무료보다는 늦게 들어오는 계산서가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공짜처럼 보였던 순간이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선택은, 언젠가 반드시 값을 되묻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얻으려는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습관이 된다. 왜 이렇게 겁 없이 공짜를 좋아할까? 습관처럼 공짜를 밝히는 가벼운 마음이다. 노력 없이 얻은 정보, 책임 없이 누린 혜택, 대가 없이 받은 인정은 달콤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맛에 점점 취하고 익숙해졌다.

습관처럼 바뀌어 버린 공짜심리, 무서울 때가 있었다.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는 온라인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페이스북 릴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때 내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와 ‘댓글’이 얼마나 달렸는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조회수는 공짜라는 기대심리가 발동하곤 했다.


하지만 가끔 게시물에는 ‘악성 댓글’이 따라붙었다. 게시물을 올린 사람을 조롱하거나, 내용을 비난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처럼 쓰라렸다.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는, 책임 없는 말들이 더 쉽게 쏟아진다. 이런 글 중에는 나라를 들먹이거나, 북으로 가라는 식의 혐오성 발언들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기주장에 대한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공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노력의 이유가 사라지는 게 더 큰 문제다. 공짜심리가 깊어질수록, 책임은 가장 먼저 마비된다. 삶을 점점 가볍게 생각한다. 실패해도 괜찮고, 약속을 어겨도 괜찮고, 준비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대신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심 없이 유지된 인연은 위기의 순간에 쉽게 무너진다. 평소에는 아무 대가 없이 함께 웃고 지냈지만, 정작 서로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는 남처럼 쉽게 등을 돌린다. 관계는 언제든 새로 만들면 된다는 얄팍한 심리가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짐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다. 제대로 마음을 쓰지 않은 관계는 필요한 순간에 남아 있지를 않았다.


공짜처럼 보였던 순간은, 단지 지불 시점이 늦춰졌을 뿐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고, 쉽게 미룬 것은 깊이 남는다. 공짜를 기대하는 마음이, 결국 가장 값비싼 습관이 되기도 한다. 삶에는 진짜 공짜가 없다. 다만 언제 지불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오늘 공짜로 아낀 비용은, 내일의 빚으로 정산된다.



※ 작가 소개: 기안장_브런치 작가, 2025년 항공문학상 우수상, 2024년 원주신문 올해의 오피니언상, 밀리의서재 올해의 밀리로드 Top 50, 문장21 시부문 신인문학상, 문학광장 수필부문 신인작가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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