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호흡

숨을 잘 들이쉬고 내쉬면 일어나는 일

by 알아차림

[아무튼, 호흡]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몹시 무던한 사람인 줄 알았다. 무던한 감정이 잠시 반직선을 벗어나도 금방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 믿음이 올해 1월에 보란듯이 파편화되었다. 믿음의 편린을 손가락 끝으로 겨우 잡아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건 평정심을 유지하고픈 내 집착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생화를 포장해왔다. 숨이 막히도록 엉킨 생각 사이에 틈을 냈다. 난 지금 저 생화를 보고 있구나, 생화는 아름답구나, 내 죽은 시간 사이에서 저 아이는 오롯이 호흡하고 있구나. 그 생화를 바라보면서 나도 호흡했다. 숨을 꼼꼼히 들이쉬고 내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덜 쿵쾅거렸다. 몇 번 호흡의 도움을 받고 나니, 호흡을 잘 배워보고 싶어졌다.


호흡은 명상과 관련이 깊다길래 집 근처 요가원에 갔다. 상담만 받아볼까 하고 들어갔다가 홀린 듯이 카드를 내민 이유는, 젊은 나는 의자 위에 마음대로 자란 선인장처럼 몸을 비틀고 있었는데 머리가 새하얀 원장님은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수업을 고르라고 하시길래 나는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처럼 몸을 쭉쭉 찢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초보반을 강조했다. 원장님은 힐링 요가반을 추천해 주셨다. 이름만 봐도 몸을 쭉쭉 찢지 않을 거란 안심이 들어서 힐링 요가반에 등록했다.


요가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도 나 자신의 몸을 친절하게 다루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면 왠지 운동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뻣뻣한 오금을 바들거리면서 더 고개를 숙인다. 그럼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자세를 고쳐 주신다.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면 자리에 누워 몸에 힘을 빼고 명상을 시작한다. 배가 부풀 때까지 코로 숨을 깊게 들이 쉬고 내 쉬기를 반복한다. 조용한 와중에 호흡 소리를 처음 귀기울여 들어봤다. 숲 길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 파도가 잔잔히 일렁이는 소리랑 비슷하게 들렸다. 그 소리가 좋아서 신이 난 사람처럼 숨을 계속 몰아쉬어 봤다. 신난 가운데 선생님이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호흡할 수 있다고 믿자”고.


이번 달, 두 번의 면접을 진행하면서 또 심장이 쿵쾅거렸다. 대기실에서 자기소개를 연습하는데, 호흡이 불규칙적인 심장 박동에 맞춰 요동쳤다. 자기소개를 연습할 때가 아니었다. 이내 읽던 자료를 뒤집고 배를 한껏 부풀려 숨을 들이 쉬고 큰 한 숨으로 바람 소리를 냈다. 거의 5분 간 숨만 몰아쉬면서 숲 속에 있듯 파도 위에 있듯 마음을 가만히 다독였다. 덕분에 정리된 호흡으로 여덟 명의 면접관 앞에서 ‘나’를 내보일 수 있었다. 무언가 닿자 떨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손으로 문을 닫고 나오면서 찰나에 생각했다. ‘언제든 이렇게 호흡하자’고. 이제 나는 배를 부풀리는 이 호흡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