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의 특별한 손님3
나는 연말 냄새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들이켜는 숨에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면, 마음까지도 맑아질 것만 같아서 매년 이 시기가 어김없이 돌아온다면 나는 어쩔 도리없이 행복하겠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은 손님이 오시기로 한 날입니다. 연말, 쌀쌀한 공기에 더해 먼거리를 마다않고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라니, 마음이 든든하게 불러옵니다. 이른 아침 예약이 아닌데도 아침부터 분주해집니다.
처음 낯선 손님이 나를 찾아오시겠다고 했을 때, 조금은 긴장이 되었습니다. 설레고 반가운 마음도 물론 컸지만 어색하면 어떻하지 무슨 대화를 나누지 마음이 쓰였달까요. 그도 그럴것이 오늘 나를 찾아오기로 한 손님은 다름 아닌 브런치계의 인플루언서 '무명독자'님이거든요!!!
지난 3월 브런치에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어느날 우연히 읽게 된 무명독자님의 글에서 꽤나 감동을 받았더랬습니다. 그의 구독자 수가 입증하듯 담담하고 유쾌하게 써내려간 경험기는 그저 담담하지만은 않았을 시간들을 차곡차곡 담고 있었습니다. 나는 빨려들어가듯 그의 글들을 읽어내려갔습니다. 퇴근 후 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읽을때면 꺼이꺼이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힘내어 버텨냈을 어린 소년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해서 마구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어느날엔 술기운을 빌려서였는지, 아니면 맨정신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밤공기의 눅눅함을 빌려 용기내어 댓글을 달았습니다. 길고 긴 장문의 댓글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동했고, 응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알지 못하는 작가님과의 소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제 글에도 꼬박꼬박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었고 알게모르게 작가님의 댓글을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 보고 부담갖지 않으시기를, 자연스러움을 부자연스러울만큼 추구하는 사람인거 아시잖아요.)
한번은 작가님께 책을 한권 권해드렸는데 너무나 좋아해주셔서 기뻤어요. 그리고 반대로 나에게 추천해 준 책 또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한 동안 그 책을 읽을 시간을 기다리느라 좀이 쑤실 정도였습니다. 브런치라는 낯선 공간에서 이렇게 마음을 나눌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는데, 문득 11월에 책방에 오신다고 하시는게 아니겠어요?
책방을 찾은 무명독자님이, 책방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기에 나가보았더니 주차를 하면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주차하면서 뒷 차 트렁크에 달린 바퀴에 스친 것 같았는데 티끌만큼도 티가 나지 않는데 찜찜하신지 차주에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아, 참으로 맑은 청년일세.. 하고 생각했더랍니다. 세속에 찌든 나는, 절대로 전화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어차피 부딪힌 곳은 차의 바퀴였고 전혀 어떠한 흠집도 나지 않았는걸요.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더더욱 편견없이 무해한 공간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 앞에 이기적이고, 배고픔 앞에 공격적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이익만큼 타인의 이익을 존중하고 나의 배고픔만큼 너의 굶주림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조금은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렇게 나의 바닥과 상대의 바닥을 살금살금 피해가면서 맺는 느슨한 관계들이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웠으면해요. 그런 나의 바람을 작가님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편견없이 무해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공간, 그러한 순간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요.
아직은 젊고 어린 그에게 이 순간이 작지만 따뜻한 시간이었기를, 이 짧은 순간이 조금이마 용기를 보태어 앞으로 더 반짝반짝 빛나기를 응원합니다.
감히 당신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픈 책방지기가 있는 곳. 여기는 무해한 책방, 책방리브레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