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 친구 사나(佐奈)씨는 아파트 사우나에서 가끔 만나는 사이다. 2019년에 일본은행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으니 이제 서울 거주 4년 차 주부다. 그녀는 그동안 코로나로 한국에 사는 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애완견과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가까운 남산에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라며 한국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 우이령길을 함께 가기로 했다.
우이령길은 북한산 둘레길 마지막 21번째 구간으로 사전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원가입 후 우이탄방지원센터와 교현탄방지원센터 두 군데 중 한 곳을 선택해 예약하면 된다. 하루 595명씩 총 1190명만 가능하도록 제한해 놓아 단풍 절정시기 주말 예약은 서둘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나(佐奈)씨처럼 외국인이나 65세 이상 어르신, 그리고 장애인들은 인터넷 예약 대신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며, 동절기에는 오후 3시까지다. 우이령길은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라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우이령(牛耳嶺)은 소의 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고개라는 뜻의 이름이다. 양주와 서울을 잇는 주요 도로로 1968년 1. 21 사태(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통제되어 오다가 2009년부터 개방되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내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40여 년 넘게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던 만큼 사람의 손길을 덜 타서 그런지 울창한 숲 속 풍경을 자랑한다.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는 4.5km로 다른 북한산 둘레길에 비해 길이 넓고 대부분 흙길로 되어 있어 걷기도 좋다. 한국전쟁 때는 이 길을 따라 양주와 파주지역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섰다고 한다. 우이령길을 걷다 보면 중간쯤에 ‘대전차 장애물’이라는 기념비와 함께 길 가에 커다란 콘크리트 시설물이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1월 초 우이령길
북한산 우이 역 만남의 광장에서 우이탄방센터까지는 약 2km 거리다. 본격적인 우이령길을 가기도 전에 입구에서부터 일본인 친구 사나(佐奈)씨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아파트가 있다니 마치 어느 휴양지 리조트에 온 것 같아요."
오봉산 석굴암에 올라가서는
"온 사람만 볼 수 있는 풍경이네요. 정말 산에 오른 보람이 있어요. 너무 멋지고 예뻐요.”
일본에 비해 한국은 한난 차(寒暖差) 영향으로 단풍철이 짧지만 단풍색이 더욱 선명하고 예쁘다고 했다. 북한산 우이 역에서부터 3시간 정도 걸어 교현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 사나 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왔다면서 아쉬워했다. 내가 싸간 종이팩 생수를 신기해하고 귤과 고구마가 너무 맛있다며 어디에서 샀는지 묻는다. 내가 이용하는 마트도 소개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현지인이 아는 정보를 습득하기는 한계가 있다. 나도 15년 전 가족과 함께 남편을 따라 인도 뉴델리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낯설고 물 설은 타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 현지인의 작은 관심과 도움은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사나씨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해 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진다. 이 일 또한 은퇴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