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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 Nov 13. 2024

13.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서

인간은 잃어야 비로소 소중함을 안다.

당초 금세 나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서인지

처방받은 약을 거의 다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어 아쉽게도 화타가 아니셨군.

하고 긍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늦게까지 하는 병원이 있어

끝나고 문의 후 방문해 볼 예정이다.


평소 고민도 걱정도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

그다지 후회는 하지 않는 편인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1만 번쯤 돌려 이미 둔감해졌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졌을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화타선생님을 믿은걸 쪼금 후회했다.

바짓가랑이까진 아니어도 소매부리 잡으며 그래도 목 좀 봐주세요 하며 사정해봤어야 했나

비대면 진료처럼 환자의 증상 프리뷰에 의존하셔서 주신약에 비해 염증이란 놈은 강력했던 거겠지.


후회한들 무엇하리.




목소리를 내기 불편해진 지금

사람은 잃고서야 소중한 줄 안다며

평소 과신했던 내 건강과 면역력

쉬면 낫는다며. 뽈뽈 돌아다닌 과거의 나..

복합적으로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서 배운 점은 목이 아프니

필요한 말을 정제하게 되었고

상대방의 말을 더 잘 듣고 최대한의 효율로 답변하기 위해 신경 쓰게 되었으며

목소리 대신 수어로 소통하는 분들의 노고를 체감했다.

(수어 책이나 수어 수업에도 관심이 생겼다.)

수어는 자신만의 닉네임을 짓는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두근대는 마음이다.

(지금 가면 너무 사연 있어 보일까 봐 회복되면 가기로 메모...)


인어공주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웃나라공주(마녀 바네사가 둔갑한)가 자신을 구해준 줄 알고 결혼하려는 배은망덕한 왕자에게

아니라고 나라며 얼마나 손짓발짓해 봤겠냐 말이다.


결국은 소통의 부재에 체념하고

그럼에도 사랑하여 물거품을 선택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다년간 수어, 자막, 배리어프리 등의 방식으로 편안한 소통과 행복권을 추구했다.


언젠가 마음으로 세상을 보시는 유튜버들이

음료캔이나 화장품에도 과자에도 점자표기가 늘어나고 있다고 좋아하시는 것들을 보며

(단지 음료, 콜라, 살구색 등 이렇게 쓰여있다고 했다)

화장품의 색조별로 다 쓰여있겠거니, 음료별로 표기해 주었겠거니 안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대적 불편함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듯이

일상생활에도 당연히 평안한 하루여야 한다.


길을 걷다 이따금 점자보도블록을 만나면

누군가의 길잡이겠다 싶어 흐뭇해지는 마음이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어떤 분이 소리치셨다

 눈이 안 보이는데 엘리베이터까지 종 안내해 주세요!


그는 그 외침을 외치기까지

얼마만큼의  냉담함을 경험했을까


다행히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 어디를 잡는 게 편하시냐 여쭈었고

그분은 환하게 웃으시며 팔꿈치 잡아주시면 된다고

연거푸 감사를 표하시며 복 받으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잘 배웅하고 나서  그분의 말씀이

자꾸만 목에 걸렸다.

이렇게 사소한 도움으로도 행복을 나눠주시니

그분은 감히 내가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이미 행복을 찾으신 분이라고.








 아침의 뉴스가 감동이어 끝에 덧붙인다.

추운 요즘  맨발의 노숙인이 매장을 찾아 겨울 점퍼의 가격을 묻다 가버렸다고 했다.


괜스레 마음이 쓰인 주인은 겨울신발을 선물했고


다음날 노숙인이 이발도 한 말끔한 모습으로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마음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지만

어쩌면 그 주인분의 따스함이 외로웠던 노숙인의 마음까지도 데워주어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가족, 내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들은 조금만 여유 있게)

내가 속해있는 곳의 사람들의 안녕을 늘 챙기고

살피며 잘 지켜내야겠다고 말이다.


아프니 더 소중함을 알겠다.


Ps. 주절대는 내 글도 좋다고 라이킷 눌러주시는 분들의 행운도 잊지 않고 기원하겠다!


일기장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래도 관심은 늘 감사하다

아픈 김에 제가 액땜했으니 다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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