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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Nov 18. 2023

할머니와 고양이

산골 일기


할머니와 고양이


팔순 넘었어도 검버섯 가려주분을 곱게 바르던 할머니 집 마루 앞엔 언제고 자유롭게 드나들던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노란 메주콩처럼 노래서 콩이라 했을까!

콩이가 빈 집 담장 위에 올라가 앉아있다. 쥐 노리듯 길 이쪽저쪽을 내려다보다가 폴짝 내려와 둘레를 빙 둘러 어디론가로 걸어가는 날들이 이어진다.

"콩이야~"하고 불러주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은 지 한참 됐고, (콩이가 살던) 집과 밥그릇 물그릇도 유품 정리사들이 다 치워버린지 한참 됐다.

할머니랑 함께한 물건은 그 어떤 것도 없는데 차마 떠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밥을 주던 할머니가 오실 것만 같아서인지 그렇게 왔다 갔다 둘러보는 건 어쩌면

어느 날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짠~ 하고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아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그 집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았지만 아이는 낳지 못했다. 아이를 원하던 부부에게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물건을 팔고 마을 이야기도 나르던 방물장수가 부모를 잃은 여섯 살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가슴으로 낳은 아이와는 십 년을 같이 살다 도시로 떠나보냈다. 자전거에 딸내미를 태우고 날마다 학교에 태워다 주던 남편(할아버지)도 오래전 떠났다.

곁에 남은 건 딸을 닮은 콩이와 전나무뿐이다.


마당이랄 것도 없는 뒷곁에 야무지게 서있는 전나무는 할머니의 남편 형님, 그러니까 시숙이 오래전 손수 심어준 것이란다. 할머니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고 든든해하셨다. 

전나무 이야기를 할 때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고 은근 자랑기가 들어있었다. 마치 시집온 여인이 남편 집안사람으로 인정받는 의식이었다는 듯,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오래 살듯이 할머니도 그렇게 이 집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무탈히 오래 살라는 듯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콩이를 불러주고 밥을 주던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거동이 불편하고 몇 달씩 병원신세를 지곤 하시더니만 여름이 문턱에 걸터앉아 있던 날 누군가 부른 119 대원들에 들려 또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는 119  차에 실리면서도 끝까지 딸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 딸이 걱정할까 봐.


"할머니, 자녀 분들에게 전화 걸게 전화번호 좀 알려 주세요."


"저 빼다지(서랍) 안에 수첩 좀 꺼내줘요."


"이거요?"


"야--"


떨리는 손으로 몇 장 넘기다가 옆에 있던 내게 건네주면서 조카 전화번호를 찾아 달라 하였다.

손바닥만 한 수첩 안에는 맞춤법은 물론 띄어쓰기도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암호 같이 삐뚤빼뚤 흔들림체로 빼곡히 써놓은 이름과 숫자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 소리 나는 대로 써놓은 조카 이름을 찾아 손에 쥐어 드리니 전화를 걸어달란

신호가 한참 갔지만 바쁜지 조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19 대원들은 "다른 보호자 없냐"라고 묻고 또 물었지만 들썩도 못하는 허리가 침상에서 요지부동이듯, 수건 팬티는 야무지게 챙기면서도 딸 전화번호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수첩을 든 할머니가 들 것에 실리는 동안  운신을 못하는 허리에서 보내는 통증 때문에 몇 번이나 "아야야야 아구구구구!!!" 끊어질 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할머니는 가을이 너울너울 산등성이 넘어올 때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가버리셨다. 아야야야 아구구구구!!!' 저절로 신음을 토해내게 하던 통증과도 이별하고, 세상살이에서 만난 안 좋았던 기억들과도 걸림 없이 이별하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위 이름의 부고장이 마을 사람들 핸드폰으로 전달 됐고, 할머니의 삶은 평생을 살던 마을이 아닌 낯선 도시 서울 어느 장례식장에서 정리되었다. 

119 대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던 전화번호를 누가 봉인해제 했는지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삶을 함께 하였고 임종도 지켰단다.


장례가 끝나고 유품정리사들의 손에 할머니의 손 때 묻은 집 안 물건들을 남김 없고 흔적 없이 정리됐다고 한다. 그런 집 안과 다르게 집 겉은 무슨 일 있었냐는 몇 달 전 몇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어 보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담장 위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콩이를 자주 볼뿐이다.


딸은 이웃에게 사료를 사 보내면서 콩이 밥을 부탁했지만 콩이는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집 언저리를 돌고 있다.

고양이의 기억은 선택 작용한다고 한다. 관심 없는 일은 몇 초도 기억 안 하지만 삶과 죽음이 걸린 중요한 상황들은 잊지 않는단다. 대상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냄새나 동작 상황을 기억하는 능력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뛰어나단다.


콩이도 그럴 것이다. 가끔 눈에 밟히는 콩이가 아무 사고 없고 별 탈 없이 제 목숨 다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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