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일흔 된 어르신이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용돈 벌어 쓰신다고 도시에 있는 학원으로 몇 개월 동안 버스와 택시로 출퇴근하면서 바리스타 공부한 뒤 카페를 하시는 곳이 있어요."
"커피만 팔아요?"
"아니요, 여러 가지 음료도 팔아요."
여러 가지 꽃들로 꾸며진 찻집 안 지인이 주인께 묻는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일흔 됐어요."
주문한 음료 말고도 군것질거리 과자와 찐 옥수수를 내주며 대답을 한다.
"여기가 고향이세요?"
"저는 충청도인데 남편 고향이 이곳이에요."
로 시작해서 한삶의 실꾸러미를 풀어놓는다.
산사태로 아내를 잃은 남자와 엄마를 잃은 두 딸이 있다는 말을, 가깝게 지내는 전도사로부터 듣고, 그동안 맏딸로 집안 살림은 물론이고 동생들 뒷바라지하던 걸 내려놓고 '그저 딸 둘만 키우면 되겠구나!'싶어 시집을 왔는데, 전해 들은 말과 달라도 너무 달라 안 살고 '친정으로 도로 가야겠다' 마음먹는데 둘째 딸이 '엄마, 엄마!' 부르며 치마꼬리를 놓지 않아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여기고 눌러앉았단다.
반찬거리 살 돈도 없고 농사지을 땅 한 뙈기 없으며 농협 빚만 잔뜩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신앙심과 신앙력으로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의 꾸러미가.
늙어서, 가정과 가족 밖에 몰라서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었다는 주름진 얼굴의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착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러나, 둘째 딸이 치마고리 붙잡고 껌딱지처럼 붙는 바람에 엄마가 되기로 하고 집안의 버팀목(내가 볼 때는 구세주)으로 살아왔다는, 딱 거기까지만 들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찬거리 사 먹을 돈이 없어 밭가에 나는 풀싹을 잘라다 국을 끓여 먹으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모습을, 학교 끝나고 엄마 찾아 식당으로 온 아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밖에서 빼꼼히 들여다보는 게 마음 아파 내 가게를 차려야겠다 싶어서 빚내서 닭튀김에 호프집 하던 모습을 상상하며 '참으로 천사같이 사셨구나!' 하는 마음으로 기억될 수 있게.
평생 차 한 대 가져본 적 없는 남편이 50만 원짜리 차라도 내 차를 끌어보면 좋겠다는 말에, 자기 형제들에게 기 펴고 살라고, 새 차를 뽑아 준 이야기까지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러나 더 잘 살겠다고, 친정집 동생들에게 차 사주고 생활비를 대주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걸 누리게 하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에 모집되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 농사짓다 돈 벌려고 모여든 이 마을 저 마을 농부들을 유혹하려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쇼까지 하는 A급 아가씨가 무대에 서는 나이트클럽을 하고 룸살롱을 했다는 이야기에는 그만 감동이 식고 말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여인을 보면서 그 하나님은 참 불공평한 분이구나!
가난한 한 가정의 엄마와 아내를 데려가고 새엄마와 새 아내를 보내주시고는 맘껏 돈 벌라고 하는 가게마다 돈을 벌게 하고 끝내는, 땀 흘리고 번 돈을 망설임 없이 가져다주는 농부와 도로공사 노동자들까지 보내주었으니 말이다.
여인은 그동안 하나님이 다 보살펴 주셔서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이 없었다며 그렇게 받은 은혜를 남에게 기부하며 살아야 하겠다 싶어서 카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