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태어나서 들은 소리 중 제일 황당항 소리였다.
"이번 정기 인사에 6급 무보직은 몇 명이나 팀장 보직을 받나요?"
"퇴직하시는 분들이 정확하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많아야 2~3명 정도?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는 보직받으시겠죠"
"저, 그게 아니라. 저는 아직 팀장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이번에 보직 대상자에 들어가면 저 빼고 다음 사람으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요즘은 7급에서 4~5년 정도 근무하면 6급으로 승진한다(물론 지자체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1~2년 뒤에는 팀장으로 보직을 받는다. 나는 동기들에 비해 육아 휴직을 많이 쓴 편이라 승진이 늦다. 동기들은 이미 팀장이 되어 읍면동사무소에도 있고 본청에도 있다. 그 간 팀장이 된 동기들의 어려움을 듣고, 이미 팀장이 된 남편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면서 나는 팀장이 되는 것을 미루고 싶었다. 그래서 공무원 생활 처음으로 인사 상담이라는 것을 했다. 이것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타 부처에서 인사팀장으로 있는 남편과 충분히 상의한 후 결정한 일이었다. 남편은 인사팀장으로서 나의 상담을 진지하게 듣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승진하기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승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다만 순위를 바꾸는 일은 인사담당자가 귀찮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지금 보니 순위가 4번이던데 확률이 낮습니다. 명퇴하시는 분들이 이번에는 유난히 적네요. 그런데 징계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승진을 하셔야죠. 승진을 미루는 건 힘듭니다."
일단 다행이다. 이번 정기인사 때는 팀장이 아닌 것을 확신하며 마음 놓고 사무실을 다녔다. 며칠 후 정기 인사 문서가 공지사항에 떴다는 글을 출장 중에 들었다. 나의 이름은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없어야만 했다.
"야. 너 부면장이야!!!!"
"에이. 그런 말은 농담으로 하는 거 아니다. 이번에 보직받는 사람은 2명이나 3명 이랬어."
친한 지인들에게는 인사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놓은 터라 인사발령문에 올라온 나의 이름을 본 그녀들은 호들갑스럽게 나에게 전화를 했다. 하이톤의 그들은 나의 희망과는 다른 결과이지만 좋은 일이라며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씨. 왜 보직을 주는 거야. 그것도 부면장으로'
부면장은 동사무소에 있는 총무팀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시골 정서상 총무팀장보다는 주민들에게 더 친근하고 오래 사용한 표현인 부면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나는 하루아침에 면사무소에서 면장 다음으로 높은 부면장이 된 것이다.
9급부터 시작한 나의 공무원 생활이 올해로 딱 20년째이다. 20여 년 전에는 7급에서도 15년 넘게 근무를 해야 6급으로 간신히 승진할 수 있었다. 이 말은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경험과 노하우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팀장이 되었으니 팀원들의 고민들을 척척 해결해 주고 악성 민원도 여유 있게 돌려보내고, 사무실 돌아가는 일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니 6급을 공무원의 꽃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9급에서 시작해서 6급인 팀장이 되기 전까지 예전에 비하면 5년은 당겨진 듯하다. 업누에 대한 노하우를 알기도 전에 팀장이 되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신규 직원들과 같이 일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늦게 팀장이 되고 싶었는데, 조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
"내가 왜 부면장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