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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29. 2021

식구들이 밖으로 나돌지 않는 집

백년가로 살 '우리집'의 얼개 짜기-채 나눔의 영역 현관홀

 ‘불 꺼진 아파트’라고 쓰고 보니 ‘불 꺼진 창’이라는 가요가 생각난다. 내 어릴 적엔 저녁이 되면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없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던 시절이라 해 질 녘에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밖에서 놀던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식구들은 30촉짜리 백열등 아래 모여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먹었다.     


 지금은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이 많다. 해가 넘어간 지 오래인데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면 불 꺼진 집이 많은데 식구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귀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 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집에 대한 정의가 이보다 더 명료할 수 있을까 싶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이 집인데 해가 떨어지고 한참이 지난 시간에도 불이 켜지지 않으면 그 집은 어떤 집일까? 식구들이 귀가歸家를 서두르지 않는 이유를 두고 아파트라서 그렇다고 집을 탓해 본다.   

   

 아파트는 사람을 쫓아내는 집?     


 아파트가 사람을 쫓아낸다고? 이 무슨 망발이냐고 의아해할 얘기다. 그러면 사람을 불러들이는 집이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당연하다는 답을 할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 증거를 내놓으라고 얘기할 테니 한번 들어보시라.     


 우선 아파트는 세대 구성원이 삼대三代가 함께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이 한 식구로 사는 집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독립하고 부부만 사는 집에 빈 방이 두 개나 있는데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서 사는 집은 드물다.   

  

 타지他地가 아니라 집이 있는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도 원룸으로 분가해서 사는 게 추세이다. 아이들이 왜 대학생이 되면 집을 나가서 살려하는 것일까? 물론 부모의 간섭을 받기 싫어서 독립해서 살려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거의 모두 그런다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삼대가 한 집에 살기 어렵고, 아이들도 독립을 서둘게 하는 집이니 아파트는 사람을 쫓아내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부부만 살다 보니 남편과 아내도 각자 저녁 스케줄을 만들어서 귀가가 늦어지게 된다. 부부 어느 한편이 귀가 시간을 늦추면 남아있던 사람도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아 집을 나선다. 삼대가 살기 어렵고, 아이들도 독립을 서둘게 하는 집이니 아파트는 사람을 쫓아내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지켜져야 할 식구들 간의 프라이버시     


 아파트는 안방과 거실이 중심 공간이 되고 나머지 방들이 현관 근처에 있다. 그러다 보니 부부 이외의 식구들은 방 하나를 얻어 쓰는 상태가 된다. 거실은 TV 시청을 위해 소파가 일렬로 놓여 있으니 집을 쓰는 기능이 복합적일 수가 없다.   

  

 아파트에서 보내는 일상이 단조롭다 보니 식구들은 잠잘 시간에 귀가하게 되나 보다. 특히 아이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이 방 하나가 되니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식구들마저 집이 편하지 않으니 손님을 청하는 건 아예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아파트에서 사는 게 편치 않는 건 식구들 간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며느리나 사위가 가장 귀한 손님이 된다. 그런데 이 귀한 손님이 하룻밤을 묵어가면 부모도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하면 다니러 오는 그날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손님이 자주 올 수 있어야 생기가 도는 집이 되는데 이를 어쩌나 싶다.

    

 이렇게 아파트가 편치 않는 건 식구들 간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실을 편하게 쓸 수 있어야 손님이 머물기 좋고, 식구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TV만 보는 거실, 싱크대에 속해 있는 식탁이 있는 공용 공간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을 나누는 ‘채 나눔’과 시그니쳐 홀     


 공용 공간인 거실 영역과 사적 공간인 침실 영역을 별개의 영역으로 떨어뜨려보자. 거실채와 침실채를 개별동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는 현관과 계단을 묶어 중심홀을 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 채가 연결되는 계단과 함께 있는 이층으로 트인 높은 공간이 식구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거실채가 단층이고 침실동이 이층이라면 중심홀은 공용 공간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는 매개 공간이 된다. 침실채의 일층은 부부가 쓰고 이층은 아이들이나 손님이 쓰게 되니 층으로 구분이 된다. 중심홀은 세 영역을 나누면서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식구들이나 손님의 프라이버시를 확실하게 지켜주게 된다.  

우리 식구들은 집에서 지내다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볼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개별 공간의 영역 분리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면서 식구들은 집보다 편한 곳이 없어졌다. 이제 식구들은 집에서 지내다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바깥에서 볼 일이 끝나는 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우리집’이 된다.        


 거실이 별도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손님을 집으로 청하는 것도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손님과 밤새워 얘기해도 되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다른 식구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손님이 하룻밤을 묵어가더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 멀리서 찾아와도 불편한 숙박시설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필자 설계 부산 이입재-시그니쳐 홀을 가운데 두고 집의 좌측이 거실채, 우측이 침실채이다 (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 김정관)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거실채와 침실채를 시그니쳐 홀이 매개하여 나누고 이어준다 (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 김정관)
돌아갈 곳이 있어서 푸근한 일상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소확행小確幸이었으면 좋겠다

       

 ‘채 나눔’으로 세 영역이 나뉘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니 부모와 자식, 주인과 손님의 시간이 자유로워진다. 집이 편하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서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 집에서 보내는 일상에 만족하면 애써 바깥나들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귀가歸家,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정겨운 표현이 있을까? 우리는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이 세상의 소풍이 끝나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돌아갈 곳이 있어서 푸근한 일상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소확행小確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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